현직 대통령의 갑작스런 계엄령 선포,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대통령 탄핵. 여기에 생각지도 못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까지 더해지면서 자칫 '집단 트라우마'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는 30일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트라우마 대응을 위한 성명서'를 통해 생존자와 유가족의 트라우마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두 학회는 "정신건강 전문가단체로서 이 참사에서 특히 중요한 건 생존자와 유가족, 목격자 및 이 사고로 충격을 받을 사람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일"이라고 짚으며 "생존자와 유가족의 트라우마에 관심을 기울여달라"고 밝혔다.
이들은 "재난과 같은 감당하기 힘든 고통의 회복에는 충분한 시간과 도움이 필요하다"며 "진정으로 이해해 줄 가족, 친척, 친구와 함께 슬픔과 고통을 나눠볼 것을 권유한다"고 안내했다.
이에 정부는 이번 사고와 관련해 보건복지부 산하 국가트라우마센터에 통합심리지원단을 구성하고, 관계부처별 가용자원을 활용해 재난경험자에 대한 심리지원을 체계적으로 실시한다는 대책을 내놨다.
특히 유족·목격자 등의 트라우마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행정안전부가 주관해 중앙재난심리회복지원단 회의를 열어 관계부처, 민간 전문가와 심리지원 방안을 논의한 뒤 이같이 결정했다.
유족이나 목격자 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이 겪을 트라우마에 대한 경고도 나왔다. 이미 이태원 참사를 통해 국민적인 슬픔과 분노가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는 경험을 했고, 1997년 발생한 대한항공 여객기 추락 사건 당시에도 많은 국민이 충격에 휩싸였다.
임명호 단국대학교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제주항공 참사의 경우 보편적인 재난으로 볼 수 있어 누가 더 트라우마에 취약하다고 할 수 없고, 오히려 모두에게 동일시 효과가 컸을 것"이라며 "20~30대가 주 피해자였던 이태원 참사와 달리 이번 사고는 남녀노소 없이 재난을 당한 경우라 오히려 더 심각하고 보편적인 재난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이번 제주항공 참사가 주는 트라우마는 더 클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특정 사고가 내 일처럼 느껴질 경우 그에 따른 학습 효과가 커 트라우마 역시 크게 나타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사고의 경우 누구나 여행을 하다가 당할 수 있는 사고라는 인식 때문에 이른바 '동일시 효과'가 발생해 더 큰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
연말이라는 시기도 심리적인 타격을 키우는 주요 요인이 될 수 있다. 지난 1년을 돌아보고 희망 가득한 새해를 맞이하는 이 시기에 절망적인 대형 사고가 발생함으로써 충격은 더욱 배가될 수밖에 없다. 특히 계엄령, 대통령 탄핵 등으로 어수선한 시국에 발생하면서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임 교수는 이런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서는 '일상'을 유지하고 주변 사람들과 더욱 자주 소통해야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자고 운동하거나 취미 활동을 하는 등의 일상적인 활동들을 유지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내가 기존에 해왔던 것들을 그대로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주변 사람들, 친구들과 심리적인 어려움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해보는 것도 좋다. 피할 수록 힘들 수 있으니 자주 표현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