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표심 의식한 지방정부 ‘눈높이 정책’ 추진 개발·교통·복지 등 생활 밀착형 정책 우선 순위 지방의회 각종 조례 제·개정... 지역 발전 뒷받침 재정 자립·중앙정치 공천권
민선 자치 30년... 성과와 과제
2025년은 주민의 손으로 지역의 대표를 선출하는 ‘민선 지방자치’가 시행된 지 30주년을 맞는 해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1949년 지방자치법 제정으로 시작됐지만, 기초단체장까지 주민의 손으로 뽑기 시작한 지금의 민선 자치는 그로부터 46년 후인 1995년부터 구현됐기 때문이다. 30년간 뿌리내린 지방자치제는 코로나19 팬데믹, 12•3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탄핵 국면 등 중앙 정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지역의 주민들을 굳건하게 지키는 방파제, 아름드리나무 역할을 하고 있다. 편집자주
■ 전쟁·군사 정권 딛고 30년... 끝내 피워낸 ‘민선 자치’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광복과 1948년 정부 수립을 거쳐 1949년 7월 ‘지방자치법’이 제정되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이 시기 도내 31개 시·군은 ‘기초단체’로서의 성격을 띠지 못했고 경기도지사조차 정부에서 임명하는 관선 형태를 띠었다. 이후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고 이승만 전 대통령이 집권한 뒤 1960년 4·19 혁명으로 하야하며 풀뿌리 민주주의가 태동하는 듯 했지만 이듬해 1961년 5·16 군사정변과 1979년 12·12 사태로 두 차례 군사 정권이 들어서면서 민주주의 자체가 암흑기를 맞았다.
하지만 군사 독재에 시민들이 맞서 싸워 1987년 6·29 선언을 쟁취하고 1991년 지방의회가 다시 열리며 지방자치 부활이 이뤄졌지만, 지방자치단체장은 여전히 관선 형태를 유지했다.
광역 단체와 기초 단체장 모두를 주민의 손으로 뽑는 민선 자치, 즉 진정한 의미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실현된 것은 1995년에서였다. 때문에 1995년 민선 자치 실시 전까지 경기도와 31개 시·군 등 지자체는 단체장 임명권을 쥐고 있는 중앙 정부에 철저히 예속돼 지역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정책들이 주를 이뤘다.
‘지방자치’에 대한 근거는 광복 직후 만들어졌지만 주민을 위한 공약을 내세우며 주민의 손으로 뽑힌 시장, 군수가 지역을 위한 정책을 펴는 ‘민선 자치’가 본격 시행된 것은 이제야 30돌을 맞은 것이다.
■ 지역 개발·갈등 해결부터 위기극복까지... 지방정부 ‘시민의 울타리’
시민에 의해 선출되고, 시민의 선택을 받고자 지역에 필요한 정책과 공약을 고민하는 민선 지방자치가 본격화된 이후 30년간, 경기도 31개 시·군을 비롯한 ‘지방정부’는 스스로의 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도시 개발, 교통 확충, 복지 강화 등 생활 밀착형 정책이 우선 순위로 자리 잡았고, 이를 위해 지방의회가 각종 조례를 제·개정하며 지역 발전과 주민 참정권 확보를 위한 기반들이 마련됐다.
그 결과 용인특례시는 최근 정부, 지역 대학, 경기도와 함께 ‘시스템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구축을 추진, 지역 발전은 물론 경기도, 나아가 국가 미래 먹거리 제공에 앞장서고 있다.
수원특례시, 평택시 등 기초지자체도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미래 산업 유치, 활성화에 주력하고 있으며 성남시도 경기도와 함께 IT 등 미래 산업이 집적화된 판교 제2 테크노밸리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민선 자치는 2020년부터 2년여간 전국을 휩쓸었던 코로나19 팬데믹 극복은 물론, ‘12·3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정치, 경제, 사회적 혼란을 막고 미래를 도모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전국을 할퀸 2020년 초부터 경기도와 시·군은 정부의 대책과 별개로 자체적인 △드라이브스루 코로나19 검사 등 방역 활동 △해외 방문객 선제 격리 △재난 지원금 지급액 확대 △시민 봉사활동 등을 전개하며 위기 대응에 나섰다. 중앙 정부의 지침만 바라보지 않은 지자체의 활동은 ‘K-방역’을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특히 지난달 3일 발생한 비상계엄 사태로 얼어붙은 민생을 활성화 하는 데에서도 지방자치가 빛을 발했다.
계엄 사태 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주요 인사 수사, 여야 극한 대립으로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한 중앙 정부와 달리 광역 단체인 경기도와 더불어 기초 단체들은 앞다퉈 민생 회복 대책을 강구하고 또 실행했기 때문이다.
수원시는 지난달 18일 지역화폐 발행량 및 인센티브 확대, 공직자 골목상권 활성화 조치, 중소기업 대출 이자 지원 강화 등 자체 특별 경제대책을 발표했고 경기도 역시 탄핵정국 영향권 상권, 기업 금융 지원 등 자체 대안을 도출했다.
대통령 탄핵 소추라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국정 공백과 혼란 속에서도 도와 시·군이 혼란을 최소화 시키며 시민을 위한 정책을 이어나간 것이다.
■ 민선자치 향후 과제는?... 중앙집권 방식 탈피 ‘지방정부 시대’ 구현
민선 지방자치가 완전히 자리 잡기 위해서는 중앙 정부에 집중된 행·재정적 권한, 중앙 정치권이 틀어쥐고 있는 단체장 및 지방의원 공천권을 개선해야 한다는 진단이 잇따르고 있다.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일수록 중앙 정부의 지원과 통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자율성을 확보할 수 없고, 지방 정부를 이끌어갈 단체장과 지방의원의 당락이 중앙 정치권에 의해 결정된다면 시민을 위한 정책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우지영 한국지방정치연구소 소장은 지자체 권한 강화의 시작은 재정권 확보에 있다고 지적했다.
우 소장은 “세수 감소를 이유로 정부가 지자체의 핵심 재원인 지방 교부세를 삭감하고 그 과정에서 지방의 의견을 배제하는 사례가 지방자치 활성화를 위협하는 주 요인”이라며 “지방정부가 재정적 자립을 이뤄야 지역 특성에 맞는 정책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순창 건국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도 중앙의 권력 내려놓기, 중앙-지방 간 협력 체계 강화가 진정한 지방정부 시대를 여는 열쇠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방 소멸 문제를 일례로 제시하며 “저출산 문제, 그로 인한 지역 소멸 문제가 중앙 정부 주도 정책이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표 사례”라며 “중앙 정치와 행정의 간섭에서 벗어나 지방정부가 독립적으로 정책을 운영할 수 있도록 재정적 권한이 확대되고 사무 권한도 대폭 이양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소 교수는 지방의회에 대한 독립성 강화도 주문했다. 그는 “2020년 지방자치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지방의회가 인사권 독립을 이뤘지만, 아직 완벽한 조직권을 갖지 못하고 있고 예산 편성권은 여전히 집행부에 있는 실정”이라며 “이는 지방의회가 성장하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 더 커져야 할 지자체를 효과적으로 견제, 감시하는 데 난관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 교수는 중앙 정치권에 쏠려 있는 단체장, 지방의원 공천권 문제도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지금의 구조로는 지자체와 지방의회가 시민의 눈치보단 중앙당과 정부의 눈치를 먼저 살필 수밖에 없다”며 “정부와 정치권의 정책, 공천 권한 독식 구조를 개선해 지방정부, 의회의 자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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