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명절엔 우리 술"…옛 방식으로 빚는 '경기도 전통주 3선' [설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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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은 명절에 집을 찾는 손님에 대한 예의로 직접 빚은 술을 대접하곤 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희석식 소주가 탄생하면서 누룩을 만들어 전통 방식으로 빚던 술이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이상균 전통주연구개발원 대표는 경기일보와의 통화에서 “1천200년대부터의 전통주 기록을 살펴보면 그 종류가 500가지 정도 되는데,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100가지도 안 되고 그 중 현재까지 만들어지고 있는 술은 더 적다”고 설명했다.

 

경기도의 술 역시 종류가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조상들의 정성을 보존하기 위해 지금도 옛 방식으로 술을 빚는 이들이 있다. 경기도 지역에서 재현되거나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전통주 중 대표적인 3가지를 소개한다.

 

■ 새해 첫 술 ‘도소주’…포천 쌀·인삼으로 재현

 

배상면주가에서 지난해(2024년) 한정 판매했던 도소주. 배상면주가 제공
배상면주가에서 지난해(2024년) 한정 판매했던 도소주. 배상면주가 제공

 

새해 첫날 마시는 도소주는 ‘사악한 기운을 잡는 술, 악귀를 물리치는 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쁜 기운과 질병을 물리치고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어른부터 아이까지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향해 앉아 한 잔씩 마시며 새로운 한 해를 맞이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현재는 새해라고 해서 도소주를 마시는 문화가 거의 없지만 포천에 위치한 전통술 박물관 산사원 만큼은 이 문화를 계속 지켜나가려 하고 있다.

 

산사원은 전통주 제조업체 배상면주가가 운영하는 곳으로, 전통 누룩 방식으로 술을 빚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더불어 겨울에는 포천의 쌀과 인삼으로 빚은 도소주를 시음할 수도 있다.

 

산사원 관계자는 “도소주가 나쁜 기운을 쫓는다 여겨진 이유는 술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약재 때문”이라며 “시음하신 분들은 인삼의 향이 좋고 목 넘김이 깔끔하다는 얘기를 많이 하신다”고 전했다.

 

■ 달콤한 향 ‘문배술’…김포서 5대째

김포 양조원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문배술. 문배주양조원 제공
김포 양조원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문배술. 문배주양조원 제공

 

문배술은 문배나무의 과실과 비슷한 향이 난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우리나라 전통주 중 드물게 쌀이 들어가지 않는 증류주다. 남북정상회담 만찬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김포에서 5대를 걸쳐 이 술을 빚고 있다.

 

김포의 문배주는 다른 첨가물 없이 조, 수수, 누룩으로만 만들어지며 군더더기 없이 투명한 빛깔과 깔끔한 맛, 달콤한 향이 특징이다. 추운 평안도 지방에서 전해져 온 술이기 때문에 도수가 높아 영구적으로 보관할 수도 있다.

 

김포 문배주양조원 관계자는 “본래 평양에서 빚어지던 술인데 한국전쟁 이후 조상들이 남쪽으로 내려와 고향과 가까운 접경 지역에서 다시 만들기 시작한 술”이라 소개하며 “지역에서도 유명하지만 술맛이 좋고 역사와 전통이 깊어 국가의 중요무형문화재이기도 하다. 그 점이 다른 지역 문화재와는 차별화 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 동화 속 붉은 술 ‘감홍로’…파주서 명맥

 

파주 양조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붉은 빛의 감홍로. 파주 감홍로 제공
파주 양조장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붉은 빛의 감홍로. 파주 감홍로 제공

 

경기도에서 명맥이 이어지고 있는 평안도 지방의 술이 또 있다. ‘춘향전’에서 몽룡과 춘향이 이별주로 마셨다는 감홍로(甘紅露)다. 말 그대로 ‘단맛이 나는 붉은 술’이란 뜻이다. 향과 빛깔이 은은하고 따뜻한 기운의 약재가 들어가 겨울에 마시면 몸의 찬 기운을 가라앉혀 준다.

 

감홍로는 파주에 위치한 양조장에서 전통을 계승한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기숙 감홍로 명인은 “좁쌀 누룩으로 만든 소주를 두 번 증류해 계피, 진피, 정향 등 8가지 약재를 넣고 우린다. 맑은 소주에 약재를 더한 술이라 약이 부족한 시절엔 약 대신 먹기도 했다”고 말했다.

 

도수가 높지만 약재에서 나오는 달큰함과 향긋함이 있어 따뜻한 물에 희석해 차처럼 마시기도 한다. 이 명인은 “우리가 술을 마시면서 열을 방출하면 반대로 속이 차가워져 탈이 나기도 한다. 그래서 조상들이 따뜻한 기운의 감홍로를 그런 식으로도 드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설에는 가족들이 모여 조상께 제사를 지내고 회포를 푸는 시간을 많이 갖는 만큼 귀한 우리 술을 선물하거나 나눠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

 

경기지역 전통주 양조업계 종사자들은 “우리 명절에 전통주를 마시는 것 자체로 우리 고유의 것이 지켜진다는 의미가 있다. 외국 술도 좋지만 명절에는 전통주가 더 뜻 깊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과음은 안 좋으니 적당히 마시며 즐겁고 안전한 설을 보내달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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