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병 가치 찾는 여정' 의로운 장부들... 경기도내 의병 활약상 밝힌다

경기문화재단, 역사문화 강의 개최... 의병 가치 조명
3·1운동 중심, 특정 인물에 치우친 연구 한계 지적
수원지역 곳곳 이어진 다양한 의병 활동 설명하고
문집 등 발굴·일람표 토대 인물 연구 필요성 강조

구한말 무명의병을 발굴하고 기념·지원하는 사업이 경기도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경기문화재단 경기역사문화유산원이 ‘강산의 의로운 장부들: 대한제국기 경기도 무명의병은 누구인가’ 역사문화 강좌를 개최해 경기도 무명의병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확산했다.

 

경기역사문화유산원은 지난 12일 경기문화재단 강의실에서 박환 고려학술문화재단 이사장(전 수원대 사학과 교수)이 진행하는 ‘수원지역 민족운동사 연구현황과 의병 연구’ 강의를 열었다. ‘경기도 무명의병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이번 역사문화 강좌는 경기역사문화유산원이 개화기 의병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마련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오는 26일까지 매주 수요일 세 차례에 걸쳐 이뤄진다. 박 이사장은 이날 강의에서 △수원지역 의병 연구의 현황 △수원지역 의병 활동 △연구 과제 등에 대해 설명했다. 특히 박 이사장은 1910년 9월 당시 ‘의병 현황에 대한 표시도’를 통해 경기도 의병이 전국에서 세 번째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점을 강조했다. 북한을 비롯한 전국에선 평안도, 황해도, 경기도 의병 순이었으며, 남한에서는 경기도 의병이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했던 점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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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데일리 메일’ 종군기자로 한국에 왔던 프레드릭 아서 맥켄지가 1907년 촬영한 ‘항일의병’의 모습. 프레드릭 아서 맥켄지

 

■ 경기도 의병 연구 ‘부족’... 3·1운동, 특정 인물 연구만 진행

 

그러나 경기도 의병에 대한 연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박 이사장은 경기도의 민족운동연구는 ‘3·1운동’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으며, 이에 따라 특정 인물에 대한 연구가 진행돼 아쉬운 상황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3·1운동에 대한 연구는 화성·수원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3·1운동의 중심이 된 기생 김향화, 김세환, 이선경 등에 대한 인물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박 이사장은 “조선시대에 대한 연구 역시 ‘정조’, ‘수원화성’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룬다”며 “그런데 이 두 가지 연구로 실제 정조와 수원화성을 올바로 밝히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원지역 ‘의병’ 연구를 하려면 조선 후기와 3·1운동 시기를 뛰어넘는 연구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없다”며 “의병 활동은 주로 유림들이 많이 했지만 수원지역 유학자들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고, 의병의 민중성을 알기 위해서는 ‘동학’을 알아야 하는데 수원지역 동학에 대한 연구 역시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정 지역에 관심 있는 연구만 진행되다 보니 사실상 토대가 되는 연구가 없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박 이사장은 ‘경기도 무명의병 기념사업’을 통한 ‘수원지역 의병 연구’가 수원의 시대성, 역동성, 연결성을 구축하는 데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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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일제의 ‘남한대토벌작전’에서 체포된 호남 의병장들. 독립기념관 제공

 

■ 수원 곳곳에서 이어진 다양한 의병 활동

 

이날 강의에선 수원지역 곳곳에서 벌어진 의병 활동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서부지역은 해안가, 특히 남양군 지역이 중심이 돼 섬과 연계하며 진행됐고, 동부지역은 용인·안성·성남·평택 등 인접 지역과 연계해 남한산성 등 다양한 산에서 이뤄졌다.

 

수원지역의 대표적인 의병장은 ‘홍일초’로 1907년 12월부터 활동을 시작해 수원을 근거지로 삼았다.

 

수원의병은 1907년 9월10일 병점역에서 서쪽으로 30리 떨어진 생장동에 700명이 집합, 경부선철도가 지나가는 오산역과 진위(평택)역을 차례로 습격했다.

 

이 외에도 1908년 1월10일엔 수원군 공항면 발안시장에서 의병 80여명이 일본수비대 보병 제47연대 제9중대와 교전을 벌였고, 다음 날엔 의병 60여명이 경찰 및 군대의 연합토벌대와 교전을 벌였다.

 

특히 수원지방의 ‘수적’ 출신 의병들은 남양군 일대와 수원군 서남방의 고온포를 근거지로 해 활동했다. 이 때문에 두 곳에선 많은 교전이 치러졌다.

 

1908년 2월21일 의병 6명이 남양군 음덕리를 습격해 남양수비대에서 파견한 토벌대와 교전했고, 3월20일엔 의병 약 14명이 남양군 북쪽 10리 유지동에서 남양수비대가 파견한 척후 5명과 2시간여 교전을 벌이기도 했다.

 

박 이사장은 일본 측 기록 등을 토대로 의병전과 관련한 산발적인 기록들을 모아 강의를 이어갔으며 다양한 사진 자료와 판결문을 선보이며 설명을 뒷받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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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수원 팔달구 경기문화재단 강의실에서 열린 ‘강산의 의로운 장부들: 대한제국기 경기도 무명의병은 누구인가’ 역사문화강좌에서 시민들이 첫 강연 순서로 진행된 박환 고려학술문화재단 이사장의 강연을 듣고 있다. 홍기웅기자

 

■ ‘문집, 통문, 격문’ 등 우리 측 자료 발굴해야

 

현재 의병 연구는 주한 일본공사관기록, 통감부 문서, 폭도토벌지, 진중일지, 의병판결문 등 주로 일본의 자료들로 진행되고 있다. 경기도 의병 연구의 범위가 제한적이고 생동감이 떨어지는 이유다.

 

가평 등 지역 유림들이 보관하는 문집, 통문, 격문 등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의병 일람표’ 등을 토대로 인물을 연구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와 함께 박 이사장은 경기도 의병이 소지했던 무기에 대한 연구, 이를 토대로 다른 지역 의병과의 무기 체계 분석, 북한 의병 연구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박 이사장은 “의병 투쟁뿐 아니라 그 주변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다양한 연구가 필요하다”며 “이번 무명의병 기념사업을 통해 많은 자료가 발굴돼 경기도 의병의 활동이 심도 있게 밝혀지고, 그 가치가 확대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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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수원 팔달구 경기문화재단 강의실에서 열린 ‘강산의 의로운 장부들: 대한제국기 경기도 무명의병은 누구인가’ 역사문화강좌에서 시민들이 첫 강연 순서로 진행된 박환 고려학술문화재단 이사장의 강연을 듣고 있다. 홍기웅기자

 

경기문화재단 관계자는 “이번 역사문화 강좌는 무명의병의 정신적 가치와 개념, 규정을 확장하기 위한 발판으로 무명의병의 정신적 가치를 발굴해 오늘날 통용될 의미를 찾을 예정”이라며 “이를 위해 경기의병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 등을 시민들에게 알릴 필요성을 느껴 마련한 강좌다. 3월에 인문포럼, 학술 심포지엄 등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기역사문화유산원의 역사문화 강좌는 오는 19일 두 번째 강의로 성주현 1923 제노사이드연구소 부소장이 ‘한말 경기남부 의병항쟁의 전개와 특성’을 진행한다. 또 26일에는 김명섭 단국대 박사가 ‘경기의병의 항일현장에서 미래를 만나다’를 주제로 시민들과 만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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