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인간 소외·대량 실업’ 위기 직면 문명 변화의 시점… 정치는 정쟁에 머물러 “대안 없는, 미래 준비하지 않는 정치 종말”
6월3일 대통령선거가 끝난 이후 한 달여 동안 지역구인 동탄의 지역 현안을 점검하는 동시에 대한민국 과학기술계의 현주소를 치열하게 따라잡는 데 몰두해 왔다. 지난 6개월간 계엄의 상처를 수습하고 정치질서를 회복해 나가려는 국내 정치의 움직임과는 별개로 세계는 이미 인공지능(AI)과 과학기술 패권 경쟁의 중심에서 질주하고 있었다.
AI, 로봇, 반도체 등 수많은 자료를 검토하면서 필자는 한 가지 불안을 느꼈다. 우리가 정치권에서 지난 십수 년간 치열하게 벌여온 수많은 논쟁이 이 거대한 기술 전환의 흐름 앞에서는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조선시대, 왜란과 호란이라는 두 차례의 전란을 겪고도 예송논쟁에 몰두했던 사대부들은 성리학 해석의 우열을 가리는 데만 열중했고 조선은 국제 정세의 흐름에서 고립됐다. 조선 후기 내내 그 흐름이 이어진 뒤에는 국권을 빼앗기는 비극을 맞게 됐다.
필자는 프로그래머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지금도 아마추어 수준이나마 코딩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른바 AI의 도움을 받아 코드를 작성하는 바이브 코딩이라는 최신 조류에 맞춰 새로운 개발 프로젝트를 시도해 보고 있다. 프로그래머로서는 분명 흥미로운 경험이지만 정치인으로서는 큰 두려움을 느낀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는 단순한 기술 발전이 아니라 문명 자체의 전환일 수 있기 때문이다.
2012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대한민국 정치의 주요 논쟁은 복지였다. 보편적 복지인가, 선별적 복지인가의 논쟁으로 표심이 갈리고 정당은 경쟁했다. 그러나 필자는 확신한다. 앞으로 십수 년간 우리 정치가 직면할 가장 중요한 의제는 ‘인간 소외’와 ‘대량 실업’이다.
AI가 예술, 작문, 상담, 분석까지 대체하는 시대에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는 근거 없는 낙관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특히 반복적이고 중간 숙련도가 필요한 다수의 일자리가 가장 먼저 위협받고 있다.
판교와 테헤란로의 프로그래머 신규 채용이 ‘절벽’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급감했다. 복지, 부동산, 조세 등 다른 모든 정치적 쟁점을 작게 보이게 할 대량 실업의 위기가 머지않은 미래에 온다. 이제는 질문해야 한다. 대한민국 정치는 다가오는 시대에 대한 전략을 갖고 있는가. 우리는 대량 실업과 인간 소외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에 대해 민주·진보 진영은 기본소득이라는 담론을 제시해 왔다. AI와 로봇으로 인해 고통받을 이들을 위한 복지적 보완책이다. 그러나 정작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대안이 없고 일자리를 갖지 않아도 기본적인 생활 수준을 보장할 수 있다는 달콤한 구상은 누구에게나 지속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기본소득은 귀에 익은 개념이지만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보수 진영 역시 기술 대전환 시대에 걸맞은 사회안전망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문제는 정치의 현실이다. 조국 전 장관 사태 이후 대한민국 정치권은 ‘검찰 정치’와 ‘검투사 정치’에 매몰돼 왔다. 상대를 구속하고 방탄하며 정치적으로 제거하는 정쟁에 몰두한 나머지 정작 미래는 정치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조선의 사화를 떠올린다. 정적을 숙청하고 권력을 공고히 하려던 정치는 결국 조선을 반으로 쪼개 쇠락하게 만들었다. 그 역사는 반복되곤 하지만 지금은 여유가 없다.
정치는 권력을 쥐기 위한 투쟁에 그치지 않고 국민의 생존을 위해 경쟁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 변화는 이미 눈앞에 와 있고 미래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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