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까지 열더니, 노래방·모텔도 그대로”
경기도가 추진 중이던 청년기본소득 ‘사용처 9개 항목 개편안’(경기일보 2월5일자 7면)이 사실상 백지화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사용처에 실질적 변동 없이 청년기본소득을 여전히 노래방, 모텔, 전자담배 판매점 등에서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가운데 도가 스스로 공식화한 정책을 실행 직전에 번복하면서 형식적 절차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11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도는 지난 2월 청년기본소득 개편안을 발표하며 사용처를 ▲대학등록금 ▲어학연수비 ▲학원 수강료 ▲시험 응시료 ▲면접 준비금 ▲창업 임대료 ▲통신요금 ▲주거비(월세) ▲문화·예술·스포츠 활동비 등 9개 항목으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청년의 삶의 질 향상과 미래 역량 개발이라는 제도 도입 취지를 살리겠다는 계획이었다.
앞서 도는 지난해 8월부터 10월까지 총 4차례에 걸쳐 정책 토론회를 열고 청년정책 전문가와 도의원, 실무자 등과 함께 “기본소득 목적에 맞는 사용처 제한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모았다. 이후 이를 바탕으로 사용처 개편안과 청년기본소득 전용카드 도입 등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개편안은 이달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도는 대학등록금·월세·통신비 등 대형 가맹점 중심 지출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다시 인식, 지역화폐의 본래 취지를 고려해 지난 5월 열린 지역화폐 심의위원회에는 학원 수강료와 시험 응시료 2개 항목만 안건으로 상정하고, 나머지 7개 항목은 논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에 따라 당초 발표했던 9개 항목 가운데 실제로 적용이 결정된 것은 2개뿐이라는 것이 도의 설명이다. 하지만 청년기본소득 사용처 제한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는 이전부터 제기돼 왔고, 지난해 열린 개편 관련 정책 토론회에서도 이 같은 우려가 이미 공유된 바 있다.
도가 이를 충분히 검토하고 논의한 뒤 정책 방향을 확정했어야 했지만, 뒤늦게 이를 재확인하며 수개월간 추진해온 개편안을 실행 직전에 번복한 셈이다. 도가 충분한 사전 검토 없이 형식적인 공론화 절차에만 머물렀다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사용처 제한이 무산되면서 기존처럼 ▲모텔 ▲노래방 ▲술집 ▲귀금속 판매점 ▲PC방 ▲마사지 가게 ▲전자담배 판매점 등에서도 청년기본소득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와의 사회보장제도 협의 절차도 중단됐다. 사용처가 제한돼야 협의가 가능한 구조지만, 사용처 변경이 없어 논의 자체가 멈춰 있다. 도는 당장 사용처 제한 추진은 어렵다는 입장이며, 사실상 개편안은 기약 없이 백지화 수순을 밟고 있는 실정이다.
‘청년기본소득 전용카드’ 발급 계획도 변경됐다. 별도 카드 대신 기존 지역화폐 카드에 청년기본소득 포인트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전환됐다. 시스템은 지역화폐 운영사인 코나아이가 개발 중이며, 오는 9월10일부터 도내 전역에서 사용 가능하도록 준비 중이다.
덩달아 대학등록금이나 어학연수비 등 고액 지출을 고려해 검토됐던 일회성 지급안도 폐기됐다. 사용처가 변동이 없는 만큼, 연 100만원 일괄 지급은 실효성이 낮다고 판단해 기존처럼 분기별 25만원씩 총 4회 지급하는 방식이 유지된다.
도 관계자는 “시험 응시료는 청년들이 실제로 많이 필요로 하는 지출이라 우선 적용했고, 나머지 항목에 대한 사용처 제한 개편은 절차상 어려움이 있어 현재로선 지속적인 추진에 무리가 있는 상황”이라며 “언제 가능하다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제도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내부 검토는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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