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협상

영국은 1760년에서 1830년에 이르는 제1차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19세기초엔 맨체스터, 버밍검같은 신흥공업도시가 생겼다.

이에비해 행정은 낙후되어 선거인대장이 엉망이었다. 신흥도시가 선거대장상으로는 무인의 옛 벌판 그대로 있는가하면 선거구조차 실정에 맞지않아 한 사람의 국회의원도 뽑지 못하는 새주거지역이 있는 반면에 주민들이 거의 이사가 얼마 남지 않은 옛 소도시엔 수명의 국회의원이 배정되기도 했다.

심지어는 지형이 바뀌어 바다에 잠긴 행정구역의 후보자에 대한 투표를 하러 주민들을 배에 태워가 배위에서 투표케하는 일까지 생겨 ‘배를 타고 바다에서 투표하러 간다’는 말이 나왔다.

이같은 모순이 증폭돼 시민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1832년 선거권을 강화하고 선거구를 재조정하여 불합리한 점을 시정하는 선거법개정이 있게 됐다.

인천시 서구 검단동 주민들의 선거구획정에 대한 성토가 얼마전에 있었다. 지리적으로 20㎞나 떨어져 생활권이 전혀 다른 강화선거구에 갖다 붙인것은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현지실정은 무시한채 제멋대로 떼었다 붙였다한 탁상놀음이라 할까.

그러나 선거법재협상에서 당리당략에 바쁜 정치권은 검단동주민들의 애탄 성토에 귀를 기울이는데 인색했다.

그보다는 이중등록제니, 석패율도입이니, 1인2표 정당명부식도입이니, 선거구인구 상하한선 위헌소지니하는 생소한 말싸움에 더 핏대를 올렸다.

지겹도록 밀고당긴 선거법협상속에 선거구를 잃게된 국회의원이 동료의원에게 주먹질 세례를 퍼붓는 촌극도 있었다.

배를 타고가 배위에서 투표하는 일이 없는 것을 그나마 위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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