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선언’, 그 이후?

김대중 대통령의 베를린선언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정부당국간협력, 화해협력, 이산가족문제, 특사교환제의는 전문 25조로된 남북기본합의서에 명시돼 있거나 함축된 내용이다. 기본합의서는 남북 최고당국자가 재가, 발효절차를 거친 일종의 조약이다.

선언은 독일 통일을 상징하는 베를린 현지에서 있었다. 그러나 그같은 의의에 충족할 만한 북한의 반응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좀 어렵다. 기본합의서가 채택된 1992년 그해에 예정된 분야별 남북공동위원회 개최를 일방적으로 거부한 이후 지금까지 일관해 오고 있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에 당장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저들은 대통령이 올들어 CNN회견방송에서 제의한 남북정상회담도 주창준 주중국대사를 통해 거부한 바가 있다. 거부해도 그냥 거부한 것이 아니고 미군철수 국가보안법철폐등 종전의 상투적 주장을 되풀이 했다.

세계적인 탈냉전 추세에 한반도만이 유일하게 기존냉전이 계속되는 이중구조속에 있다. 이에 평화, 화해, 협력의 대북정책 기조로 냉전을 종식시키고 싶어 하는 대통령의 뜻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바란다고 해서 저들이 개혁개방의 길로 선듯 나서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흡수통일 배제를 강조해도 빗장문을 여는 것은 저들의 ‘우리식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두드리면 문은 열린다지만 열리기가 어려운 것이 북한의 빗장이다.

하긴, 베를린선언은 뜨거운 감자일 수가 있다. 이산가족 문제는 북측은 다루고싶지 않은 일이다. 반대로 협력제안, 특히 식량증산문제같은 것은 절실한 입장이다. 언젠가는 선택적 사안별 접촉 반응이 있을 가능성이 전혀 없진 않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조건을 붙일게 뻔하다. 가령 연평해전대첩에 유감이나 사과표명 요구를 해오면 정부는 어쩔 것인지 궁금하다.

궁금한 것은 또 있다. 근래 김대통령은 유별나게 대북 화해 제스처를 많이 썼다. 베를린선언 역시 발표전에 이례적으로 판문점 적십자연락관을 통해 북측에 내용을 전했다. 김정일 위원장의 평양주재 중국대사관 방문에 이어 백남순 외교부장은 베이징을 곧 방문한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이 모종의 채널이 가동되고 되고있는 징후인지 어쩐지 잘 알 수 없다. 만약 그렇지 않고 무관하다면 베를린선언은 메아리 없는 일방적

제스처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추이를 주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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