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13일 전직 대통령들과의 만찬석상에서 지역감정의 골을 해소하기 위해 ‘호적에서 본적을 없애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이후에 찬반 양론이 연일 제기되고 있다.
‘망국병’으로까지 일컬어지는 지역감정 문제가 특히 선거 때 마다 증폭된 작금의 현실을 생각해 볼 때 호적에서 본적을 없애려는 생각에 이해는 간다. 하지만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는 지역감정이 과연 호적에서의 본적란 때문인가. 물론 아니다.
역대 정권이 국민의 자연스런 애향정서를 불순한 의도로 왜곡시켜온 것이 지역감정이라는 망국병의 원인이다.
본적의 가족법상 정의는 호적의 존재장소다. 그러나 국민정서는 법에 앞서 연년세세(年年歲歲)의 혈연, 가족관계 및 개인 정체성의 표현으로 인식하고 있다. 법을 바꿔 본적을 삭제할 수는 있지만 그에 앞서 국민 일반의 공감이 선행돼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현 제도하에서는 사회생활을 할 때 각종 서류 등을 통해 개인의 본적지가 따라다니고 그로 인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출신지를 환기시켜 주기 때문에 본적란 삭제가 지역감정 타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일부의 찬성론도 있다. 그러나 호적에서 본적을 없애는 일은 여권에서 국적을 안쓰는 것에 비유할 수 있으며 이력서에서 학력을 없애는 것 과도 같다.
본적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뿌리와 고향을 의미하는 것이다. 본적 기재를 왜 나쁜 의미로 해석하는가. 또 호적제도 자체는 유지하면서 본적지란을 없애는 것은 호적등·초본 발급시 출생지 등이 상세히 나타나 실익도 의문시 된다.
현실적으로 취업, 진학, 자격시험 때 본적지를 스스로 표시토록 하는 관행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만큼 설령 호적에서 본적이 삭제된다 하더라도 실제로 지역주의를 치유할 수는 없다. 현 제도하에서도 본적을 옮기는 전적(轉籍)이 어렵지 않고, 또 많은 국민이 실제로 본적을 옮기고 있지만, 그로써 지역감정 문제의 심각성이 결코 덜해지지는 않는다. 지역감정을 극소화하려는 고충은 십이분 이해가 되지만 호적에서의 본적 삭제 문제는 무리라는 점을 거듭 강조해 둔다. 본적폐지 검토는 지역감정 해소방안의 하나로 제시된 것인지 법령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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