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과 서독이 통일을 위해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가진 날은 1970년 3월 19일 이었다. 1차 회담 준비를 위해 가진 4차례의 실무회담에서 쟁점이 된 것은 ‘의제’보다 회담장소였다. 동독측은 브란트 총리가 서베를린을 거쳐 동베를린을 방문할 것을 요청했으나 서독측은 회담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의식, 거부했다. 결국 동독측이 제3의 장소로 제안한 동독 접경지역 에어푸르트로 결정됐다.
1차 회담에서 빌리 슈토프 동독 총리는 국제법상 동등한 동서독 관계수립, 유엔 동시가입 등 7개항의 기본입장을 제시했고, 서독측은 양국간 선린관계 제도화 등 6개항을 제시했다. 1차 회담은 서로의 입장을 듣는 선에서 끝났다.
2차 회담은 두달 후 서독지역 카셀에서 개최됐다. 1차처럼 하루 일정으로 양국 입장을 주고 받았으나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을뿐 아니라 회담계속을 약속하는 공동성명도 발표하지 못했다. 정상회담 자체가 가시적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정상의 만남을 계기로 양측은 데탕트와 공존의 필요성을 공감했고 실무자급 대화를 꾸준히 이어갈 수 있었다.
1970년 8월 3차회담에서 상호 불가침과 현상 인정에 대한 조약을, 1971년 4차 회담에서는 서독·서베를린간 통행협정을 체결했다. 1972년 11월 마침내 양측이 상호 협박과 무력 사용을 포기하고 양측간 국경을 준수하며 서로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기본조약’에 서명했다.
그런데 한국은 오는 6월 평양에서 열릴 예정인 남북한 정상회담을 앞두고 너무 장밋빛 환상에 젖어 있는 것 같다. 동독과 서독은 1990년 10월 통일까지 20년동안 9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는데 한국은 험난한 길인줄도 모르고 1차 회담으로 통일을 이룰 것 같이 흥분해 있다. 제발 침착했으면 좋겠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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