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박 앙갚음 연쇄살인극

참으로 끔찍하다. 이성이 마비되고 나면 그 어떤 야수보다도 잔인할 수 있는 게 바로 사람이다. 우리 모두를 소름끼치게 한 이천 연쇄살인범의 범행은 인간의 가슴속에 도사린 악마성(惡魔性)이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사소한 시비끝에 발작된 살인 광기(狂氣)를 스스로 제어하지 못한 채 사흘동안 5명을 살상한 범행들은 엽기적 공포영화나 납량소설속에서나 있을 수 있는 것으로 여겨왔던 것들이다.

이번 범죄는 그 동기와 배경이 아주 단순했다. 노름판에서 개평(고리 돈)을 떼려다 벌어진 싸움에서 폭행당한 앙갚음으로 상대방의 머리 가슴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말리던 사람에도 흉기를 휘둘러 중상을 입혔다. 범인은 내친김에 그동안 자신을 업신여기고 구박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찾아 살인극을 벌였다. 희생자 중엔 자신이 기거했던 절의 주지 부부와 술집주인도 있다.

범인은 ‘첫번째 범행후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생각해 일생동안 나를 괴롭힌 사람들을 모두 죽이려 했으며, 그 대상은 10명정도’라고 했다니 아연실색할 일이다. 범인이 그 이전에 잡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 사람들의 생명도 위태로웠을 것이다. 모골이 송연해진다.

범인이 털어놓았듯이 범죄의 동기가 된 것은 자신을 멸시하고 손찌검했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증오였다. 범인은 유년시절에 부모를 잃고 고아원에서 생활하며 고교를 중퇴했다. 50세가 넘도록 결혼도 못한 채 떠돌이 생활을 했으나 배운 게 없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데다 외소한 체격탓에 매맞고 따돌림 당하는 경우가 많아 심한 소외감과 원한이 쌓였음직 하다.

범인들의 잔혹한 범죄는 한마디로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이 낳은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치관이 무너지고 인간성이 상실되는 물질만능적 세태는 사람의 목숨까지도 욕구충족의 수단으로 삼는 풍조를 낳았다. 뿐만 아니라 극심한 경쟁체제는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에게 소외감과 좌절감을 심어주었다. 이번 범인이 자신을 구박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 대해 갖게된 증오심도 힘만이 유일한 가치요 기준인 것 같이 인식케

한 우리 시대의 사회적 병리현상이었다. 이런 사회병리의 근본을 다스려 나가지 않는 한 범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우선 우리사회의 갖가지 모순을 줄여 나가는 구조적 처방과 함께 올바른 가치관 정립방안을 모색하는데서부터 문제를 풀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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