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시 양성면 미리내 성지 주변을 통과하는 고압 송전선로를 설치하려는 한국전력의 계획은 재고돼야 한다. 당초부터 미리내 성지가 차지하는 역사적, 종교적 중요성을 안일하게 여긴 것이 차질을 초래한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미리내 성지는 조선말 천주교 신자들이 조정의 박해를 피해 모여든 교우촌이었으며, 한국인 최초의 사제 성(聖) 김대건 신부의 묘소가 있는 지역이다.
대광장을 중심으로 십자가의 길, 경당, 김대건 신부 동상과 성모 성심당, 103위 시성 기념 성당, 미리내 성당, 무명 순교자의 묘역, 수도회 등이 자리하고 있으며 연간 200여만명의 순교자들이 찾고 있는 ‘한국 천주교의 요람’ ‘은혜의 땅’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곳이다.
이러한 사실을 한전측이 모를 리 없었을텐데 당초 계획을 변경까지 하면서 미리내 성지주변에 고압 송전선을 설치하려 했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수를 두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한전에 따르면 용인과 안성을 잇는 345KV 송전선 24㎞ 신설을 위해 1996년 설계를 마치고 1997년부터 철탑설치에 들어가 올 연말까지 완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난 해 선로가 변경돼 6.5㎞ 구간이 양성면 노곡리 외곽을 거쳐 미리내 성지를 둘러싸고 있는 쌍령산 능선을 통과하게 됨에 따라 천주교측과 주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당초에는 반대편 능선을 통과할 예정이었으나 인근 극동기상연구소의 관측 업무에 끼칠 장애를 우려하여 1.5㎞ 정도를 미리내 성지쪽으로 당겼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미리내 성지측과 주민들이 한국 천주교의 역사가 서린 미리내 성지를 훼손하는 것은 물론, 전자파 방해 등 주민들의 피해까지 앞세워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면 전력의 안정적 공급에 차질을 빚게 된다는 한전의 원칙론에는 물론 수긍을 한다. 그러나 설계변경 과정에서 천주교측과 주민들에게 사전에 알리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한 것은 민원야기 소지를 자초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또 마땅한 대안이 없다면서도 원만한 합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한전측의 막연한 대책도 딱하기 짝이 없다.
설계변경을 재변경해서라도 천주교측과 주민들이 공감하는 대책을 마련하여 극심한 마찰을 미연에 방지할 것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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