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홍과 진성여왕

요즘 방영되고 있는 KBS-TV의 주말사극 ‘태조 왕건’을 보면 신라 제51대 임금 진성여왕(재위 887∼897년)과 진성여왕의 삼촌이며 각간(角干·진성여왕 당시 가장 높은 벼슬)인 김위홍(金魏弘)의 통정(通情)이야기가 나온다.

진성여왕이 실제로 그러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사극 ‘태조 왕건’은 위홍과 진성여왕의 관계를 다루면서 이들이 삼촌과 조카 사이라 해서 이를 불륜으로 몰아갔다.

현대 한국사회에서 삼촌과 조카가 몸을 섞었다면 불륜을 넘어 패륜이지만 역사를 1천년 이상 거슬러 신라사회로 들어가보면 이들 사이는 불륜이 아니라 로맨스다. 왕을 중심으로 한 신라 지배층 사이는 근친혼이 대단히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아들, 같은 어머니 밑에서 난 형제자매가 아니면 친인척 누구와도 혼인이 가능했고 그래야만 했던 사회가 바로 신라였다.

예컨대 제23대 법흥왕(재위 514∼540년)의 동생 입종갈문왕은 법흥왕의 딸, 즉 조카인 지소부인과 결혼을 해서 제24대 진흥왕을 낳았다. 또 김유신은 여동생인 문희와 김춘추 사이에서 난 딸과 혼인을 했다. 그러니까 김춘추는 김유신의 처남이면서 장인이고 문희는 김유신의 여동생이면서 장모인 것이다.

신라는 이처럼 근친혼이 성했다. 오히려 지배층에서는 근친혼을 해야만 했다. 이런 전통은 고려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극 ‘태조 왕건’에서 위홍과 진성여왕의 관계를 불륜이라고 한 것은 현대 유교적 도덕기준에 따른 것이지 신라인의 눈으로 본다면 귀족사회의 로맨스다.

위홍은 서기888년 대구화상이라는 스님과 함께 신라 향가를 모은 ‘三代目’이라는 시가집을 편찬한 인물이다. 그 ‘삼대목’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면 이런 시가집 편찬을 명령한 진성여왕이나 그것을 직접 만든 위홍이 색욕으로 가득한 인물들로만 혹독한 평가를 받지는 않았을 것 같다.

/淸河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