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1957년에서 63년까지 영국 총리를 지낸 맥밀란은 아내 도로시의 간통을 30년동안 감쌌다. 도로시가 정부 부스비와 놀아나 낳은 딸아이를 자신의 딸로 호적에 입적시켰다. 맥밀란은 도로시의 이혼요구를 단호히 거부했다. 먼훗날 이렇게 말했다. “아내의 이혼요구를 거부한 것은 정치생명에 가해질 치명적 타격도 타격이지만 무엇보다 아내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라고.

미국사회에서도 대통령후보의 이혼경력은 치명적이다. 다만 레이건은 이를 극복하고 재선에까지 성공한 유일한 케이스다.

건국한지 일천했던 1950년대에 군·관계에서 벼락출세한 이들이 미모의 지식층 여성들과 재혼하기 위해 조강지처와 이혼하는게 유행이 되다시피 한 적이 있다. “이상이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에선 지도층의 이혼경력이 별 흠으로 여기지 않는 그릇된 풍조가 아마 이에 연유하지 않았는가 싶다.

이혼은 무명의 서민층에서도 점점 더 심화하는 것 같다. ‘경기도 2000년 도정 주요통계’에 의하면 95년 한해동안 1만2천66쌍에서 97년 1만6천658쌍, 99년 2만1천938쌍으로 해마다 2천2백여쌍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혼을 대수롭지 않게 아는 잘못된 생각은 가정의 불행일 뿐 아니라 사회를 병들게 한다.

요즘 부부들은 중매도 아니고 연애 끝에 결혼한다. 부부로 만난데 대한 서로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결혼하기 전에 아무리 상대를 잘 알았다해도 결혼하고 나서는 미쳐 몰랐던 단점을 서로가 알게 되는 것이 부부다. 그렇긴 하나, 선택한 책임감속에 세파에 시달리며 미운정 고운정 들면서 살게 마련인 것이 또한 부부이기도 하다. 이혼의 유혹은 악마의 속삭임이다. 이혼은 지도층뿐만이 아니고 민초들에게도 품성의 도덕적 가치기준이 된다. 서로가 이해하고 용서하는 일상의 마음가짐이 부부의 참 사랑이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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