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천만 동포

조선시대의 인구조사는 호구자료가 근간이었다. 집집마다 호구단자를 관아에 제출하여 집계했다. 관이 주도하여 인구조사를 하는 것이 아니고 민의 신고에 의해 작성됐다. 호구단자를 3년마다 내도록 하는 신고의무는 물론 조정의 정책이었다.

호구조사는 조세부담, 군역 등을 위한 것이었으나 확실하지 못했다. 흉년이나 전염병으로 인구가 줄어도 이를 은폐하는 수령이 허다했다. 또 유아사망률이 높았으므로 10세미만의 어린 아이들은 신고대상서 제외했다.

그러나 3년마다 주기적으로 수백년동안 조사된 호구기록은 세계적으로 드물어 조선시대의 호구조사는 그런대로 평가받고 있다. 태조2년(1393년)의 조선 인구는 5백57만2천명(30만1천300가구)이었으며, 1천만명을 돌파한 것은 중종6년(1551년) 1천1만명의 기록이 처음이다. 융희4년(1910년)의 인구는 1천7백47만7천명으로 ‘이천만 동포’라고 했다. 1945년 광복 당시에는 ‘삼천만 동포’라고

했다.

조선조말 하와이 이민,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이민이 시작되면서 해외동포가 늘기 시작했다. 연해주 동포에 대한 스탈린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로 지금은 독립된 구 소련 연방국가에도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산다. 일제시대에 중국 일본에 건너가 그대로 사는 동포들도 많다. 아시아, 북미, 남미, 동·서구, 대양주, 아프리카 등 6대주 70여개국에 우리 동포들이 살고 있다.

남북한과 해외동포를 모두 합쳐 ‘칠천만 동포’라고 한다. 21세기는 인구가 국력이 될 것으로 보는 관측이 있다. 우리의 인구는 단일민족이라는 것이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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