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공동퇴임사

소피스트(변론술·궤변학파)에 반대하여 진리의 절대성을 주창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BC 470∼399)는 길거리 대화교수법으로 민중개발에 힘쓰는 등 갖가지 기행이 많았다. 악처담은 유명하다. 한번은 소크라테스의 처 크산티페가 남편에게 큰 소리로 욕을 퍼붓다가 갑자기 찬물 한통을 머리에 끼얹었지만 그는 “우레 소리가 났으면 큰비 오는게 당연하지…”하고 태연했다. 신을 모독하고 청년을 타락케 했다는 혐의로 옥에 갇히자 옥리로부터 탈옥을 권유받았으나 “악법도 법이다”라며 거절, 마침내 독배를 마셨다. 그의 사상은 사후 제자 플라톤에 의해 크게 꽃피워졌다.

소크라테스를 생각케하는 법언이 나왔다. ‘국민의 이름으로라면 무엇이든 할수 있는 듯이 급조된 국민여론을 내세워 법의 권위를 짓밟는 사회현상에 냉철한 판단으로 대응할때도 됐다’고 밝힌 이돈희대법관을 비롯한 6명의 대법관 공동퇴임사가 눈길을 끈다. “우리 사법부는 급변하는 사회현상을 맞아 어느 선에 법의 잣대를 맞춰야 올바른 것인지, 고뇌가 연속된 세월이었다”고도 했다. 또 “법의 괴리가 심화되었을 때는 판례를 통해 그 괴리를 메워줄 입법절차를 촉구할 부차적 업무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고 돌이켰다. 법 질서가 무시되는 사회분위기를 개탄, 법이 유린되면 사회가 유린되는 진리를 정곡을 찔러 경고한 것으로 보아진다.

법경시 풍조는 오래된 고질이긴 하지만 4·13 총선을 앞둔 DJ의 선거법불복종선언후 더 심화해지지 않았나 싶다. 지켜야할 법과 안지켜도 되는 법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법을 안지켜도 된다고 했으므로 법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 설득력을 잃는다. 이래저래 현대판 소피스트들로 인해 사회가 무척 불안하다. 우리에겐 소크라테스같은 현자(賢者)가 없는

것일까.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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