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1879∼1955)이 나치에 의해 추방되기전 1920년 독일에 있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세계경제공황이 일어나 아인슈타인의 생활을 걱정한 몇몇 미국인들이 수표를 보냈다. 한달이 지나서 이를 비로소 알게된 부인이 남편의 연구실 책갈피를 뒤져봤더니 그 속에서 수표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만큼 자신의 연구외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전에는 사랑하는 것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생각하는 것만 사랑한다”고 했다.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노벨물리학상에 이어 노벨화학상을 받은 퀴리부인은 1906년 남편을 잃고 생활이 어려웠으나 라듐에 관련한 주변의 특허권유를 “학문을 돈으로 타락시킬 수 없다”면서 끝내 거절했다.
지금은 다르다. 어떤 분야든 대가나 거장이 되면 노력에 상응한 처우를 돈으로 따져 환산한다. 학문을 돈으로 타락시킨다기보다는 돈으로 평가한다고 할까, 학문의 가치관이 달라졌다.
학문뿐만이 아니다. 예컨대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 같으면 직능 자체의 평가보다는 국회의원은 차관급이냐 뭐냐, 지방의원은 부단체장급이냐 뭐냐하는등 관직과 비교하기를 즐긴다. 사회가 벼슬과 황금위주의 양대구조로 의식해온 탓이다.
비근한 예로 교장은 누구나 교육감이 될수 있고 교육감을 그만 두면 교장으로 되돌아갈수 있는데도 교육감을 큰 벼슬자리로 사회는 우월시한다. 의사도 마찬가지다. 돈많은 금만가나 재벌이 의사에게 “선생님…”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인명을 맡긴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술이든 의술이든 의사가 사회의 존경을 받는 것은 돈을 잘 벌어서가 아니라 인명을 다루기 때문이다. 의약분업에 당치않은 점이 있어 일부 의사들이 파업을 하고는 있으나 너무 오래 끌어 원성을 듣고 있다. 직능의식이 존경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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