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가지 문제에 대한 김대중대통령의 현실인식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국정운영의 권력이 수평분산되지 못하고 대통령을 정점으로 수직집약된 경직체질에선 정확한 현실인식이 더욱 중요하다. 원유정책만 해도 올 봄부터 이상징후가 있어왔던 것을 미온적으로 대처, 결국 사태를 더 악화시킨 결과가 됐다.
엊그제 민주당의 당무보고자리에서 보인 대통령의 현실인식 또한 심히 답답하고 걱정스럽다. 의약분업으로 겪는 국민적 고통, 박지원문화관광부장관이 배후인물로 지목받고 있는 부정대출사건의 국민적 의혹에 원칙론만 되풀이 하였다.
도대체 그 원칙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본다. 의약분업의 원칙을 위해 국민이 말못할 고통속에 헤매도 참아내야 한다는 원칙은 있을 수 없다. 박장관에게 의혹이 제기되고는 있지만 법적으로 아무 하자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므로 미흡한 것은 국회에서 따져야 한다는 원칙 역시 이상한 원칙이다. 부정대출의혹 이면에는 모 실세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것이 세간의 시선이다. 검찰 내부에서조차 미진한 수사로 규정짓는
한빛은행 부정대출 수사를 두고 하자가 없음을 강변하는 것은 결국 덮어두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국정감사를 통해 추궁할 수도 있다는 것은 편의적 논리다. 지금의 여당이 야당일적에 국감을 통해 집권의 비리를 규명하는데는 늘 한계가 있음을 누구보다 더 체험한 사실이다. 국감은 어디까지나 국감으로써의 기능이 따로 있다. 부정대출사건에 진정 아무 관련이 없다면 왜 기를 써가며 특검을 굳이 안받아들이겠다는 것인지 알수 없다. 특검 수사에서 혐의가 드러나지 않으면 오히려 야당의 정치공세가 허구로 입증될 수 있음에도 이를 거부하는 것은 단순히 자존심 때문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대통령의 민심파악은 결함인사가 낀 당지도부 공식채널로는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렵게 돼 있다. 현실인식에 대한 결함이 이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왜곡되지 않은 민심동향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정권출범이래 최대 위기로 규정, 당내 20여명의 초·재선의원들이 추진하는 지도부 인책의 집단요구를 유의해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개선이 아무리 고무적이라해도 대내문제에 잘못을 저질러서는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시드니 올림픽에 아무리 시선을 빼앗긴다 해도 국민들은 거듭되는 실정의 고통을 잊지 못한다. 남북관계개선 또한 대내문제에 지지를 받아야 힘을 받는다. 현실을 직시할줄 아는 대통령의 형안이 회복돼야 한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