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의 시인 서정주씨(85), 그의 아호 미당(未堂)은 ‘덜된 집’이란 뜻이다. 아호가 말해주듯이 “나에겐 마지막이란 말이 없다”면서 부단한 시작활동으로 영원한 시정신, 시인의 세계를 탐구하고 있다.
중앙고보 재학시절 한때 사회주의에 매료되기도 했으나 해방직후엔 우익문인단체를 만들어 활동했다.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서 시 ‘벽’의 당선으로 등단하였다. 일제때 협박받아 강제로 쓴 ‘오장’(伍長·우리계급으로 중사)이란 시하나 때문에 친일시비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알고보면 민족적 서정추구의 성향이 더 짙었던 분이다. 춘원 이광수와 마찬가지로 그 시대의 불행했던 지식인의 흠이긴 하지만 분명 오늘의 한국 시단을 갈고 일군 거목이다.
향리 전북 고창에서 그의 문학관을 만든다는 말을 듣고 “내가 살아 있는데 남세스러운 일…”이라고 했을만큼 성품이 소박하다. 한번은 인터뷰 약속을 해놓고 그 지면의 특집 컷이 ‘명사초대석’이란 것을 알고는 “내가 무슨 명산가? 명사아냐!”하면서 끝내 번복한 적이 있다. 지지대子가 일선 기자시절에 겪은 일이다. 댁에 전화를 걸면 언제나 첫마디가 “미당입니다…” 하시곤한 인자스럽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나 바람 나지 말라고/아내가 새벽마다 장독대에 떠 놓은/삼천 사발의 냉숫물/내 남루와 피리 옆에서/삼천 사발의 냉수 냄새로/항시 숨쉬는 그 숨결 소리/그녀 먼저 숨을 거둬 떠날 때에는/그 숨결 달래서 내 피리에 담고/내 먼저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면/내 숨은 그녀 빈사발에 담을까’
시 ‘내 아내’를 통해 이토록 애틋한 부부의 정을 비쳤던 부인 방옥숙여사가 얼마전 타계했다. 그의 시어(詩語)대로 ‘그 숨결 달래서 내 피리에 담고’의 산고를 치르는 것일까. 미당은 곡기를 못넘기어 탈진,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쾌유를 빈다.
/白山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