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仙

28일 오늘 이 땅의 시인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시인의 육신이 전북 고창군 선운리에 묻힌다. 지난 24일 밤 11시7분 삼성 서울병원에서 이승을 떠나기 1시간 전 미당은 ‘눈발이 날리는 날’이라는 자신의 시 한 구절인 ‘괜찮다 괜찮다’를 외었다고 한다. 영면직후에는 시 ‘눈발이 날리는 날’처럼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85년 생애를 마감하는 운명과 함께 눈이 내리기 시작한 하늘을 바라보며 시처럼 떠난 것이다.

1915년 전북 고창군에서 태어난 미당은 첫시집 ‘화사집’을 비롯해 ‘귀촉도’‘신라초’‘동천’‘질마재 신화’ 등 15권의 시집을 냈다. 8·15 광복이후 언론사 문화부장 등을 지낸 미당은 모교인 동국대 교단에 선 이래 종신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써왔는데 타계할 때까지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했다.

일제말기의 친일시 발표, 전두환 정권 수립 와중에서 TV방송에 출연하여 군부를 지지한 상처를 남겼지만 그러나 죄 한번 안짓고 지탄받을 일 한번도 안한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

정부가 26일 미당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한 것도 ‘감나무는 거기에 매달린 열매를 보고 평가하라’라는 격언을 입증했다고 하겠다.

미당의 장례는 문인장 등이 논의됐으나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조촐히 치렀다. ‘국화옆에서’‘귀촉도’‘동천’‘자화상’ 등 10여편이 교과서에 수록된 미당의 시세계는 자신의 말처럼 생명파, 또 인생파이다.

미당의 고향에 있는 선운사(禪雲寺) 입구에는 “선운사 고랑으로/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백이 가락에/작년것만 오히려 남았읍디다/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읍디다’라고 노래한 ‘선운사 동구(洞口)’ 시비가 있다.

저승에서도 시인으로 환생할 미당 선생의 영생을 삼가 빈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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