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 와 術

두 노비의 다툼에 “네말이 옳다” “네말도 옳다”고 하자 “하나가 옳으면 하나는 그른 법인데 어찌 둘다 옳을수가 있습니까”하는 말에 “네말 또한 옳다”고 한 것은 유명한 황희다. 조선조 태종때부터 관직에 60여년 있으면서 세종땐 영의정을 18년이나 지냈다. 마침내 관직을 물러나 병석에 누워 세종이 문병갔다. 허름한 집안에 청백리의 방바닥이 멍석인 것을 보고 왕이 놀라자 “늙은사람 등 긁는데는 멍석이 제격입니다”라고 했다.

그가 ‘네말도 네말도 옳다’고 한것은 사소한 시비에만 관대했을뿐 주관이 없는 무골호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주요 국사엔 시비를 분명히 가려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앙녕대군 폐세자땐 극력 반대하다가 태종의 노여움을 사 유배됐다. 다섯번 좌천되거나 파직되고 귀양살이를 세번에 걸쳐 4년동안 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의정부 논의에 배석한 병조판서 김종서를 혼낸 일화가 있다. 그의 앉은 자세가 바르지 못함에 “병판대감 의자가 잘못됐나보다…여봐라 빨리 고쳐 드려라!” 하고 큰소리치자 김종서가 급히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나중에 맹사성이 “왜 그에게 그토록 엄히 대하느냐”고 묻자 “우린 다 늙어 퇴물이고 그가 뒤를 이어야 할 것이니 바르게 인도하기 위함”이라고 대답했다.

아랫사람의 시비는 곧잘 따져 강직한듯 하면서도 윗사람의 시비엔 이눈치 저눈치를 살펴 꽁무니를 빼는 사람들이 많다. 이렇게 해서 출세한 사람들은 마치 곡예사 같은 처세술의 달인으로 대개 행세한다. 원칙논리 보다는 상황논리를 앞세운다. 세상살이 방법엔 술(術)과 도(道)가 있다. 술은 재주고 도는 근본이며, 술은 가변인데 비해 도는 불변이다. 황희는 술보다 도를 앞세우며 살았던 분이다. 이에비해 역사에 나타난 간신배들은 하나같이 술에 치우친 위인들이다.

현세에 그 누구도 도를 지키며 산다고 말하긴 무척 어렵다. 그러나 조물주는 인간에게 반성할줄 아는 영혼을 주었다. 술의 해악에 도를 지키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남을 지배하는 권력을 지닌 이들일 수록이 더욱 그러하다. 술의 권력자는 권력을 놓을땐 허전하고 두렵다. 도의 권력자는 권력을 놓을때 빚을 갚은 것처럼 후련해 한다. 황희는 권력에서 물러나면서 노구를 편하게 해주는 세종의 성은에 진실로 감읍했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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