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기의 퇴계 이황(1501∼1570)과 율곡 이이(1536∼1584)는 다같이 공자를 모신 문묘에 배향된 거유(巨儒)다. 이퇴계는 주기파(主氣派), 이율곡은 주리파(主理派)로 성리학 양대산맥의 거봉이다. 벼슬도 두분 다 대제학 판서등을 지냈다.
그러나 율곡은 열세살때 진사시 장원을 비롯, 여러 과거에 아홉번이나 장원해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 이라는 말을 들은데 비해 퇴계의 출발은 불운했다. 지금말로 시험운이 없었던지 스물세살적부터 진사시를 세번이나 낙방한 끝에 네번째에 성공하고 과거는 설흔세살때 대과(大科)급제했다. 율곡은 일찍 트였고 퇴계는 늦게 트였다 할수 있을는지.
요즘 영재교육이다 하여 조기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 우리말도 잘 못하는 아기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한다. 영재교육 자체가 나쁘다 할순 없다. 영재가 아닌 아이에게 영재교육을 억지로 시키는 것은 고문이나 다름이 없다. 영재는 부모의 허욕으로 영재가 되는것이 아니다.
근세 자연주의의 비조 루소가 1762년에 발표한 교육소설 ‘에밀’이 강조한 인위적교육배격, 즉 인간본성존중의 교육에 비추면 부모의 잘못된 극성은 되레 아이를 그르친다. 교육심리학은 성장기의 인격형성은 다단계를 거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영재는 영재대로 범재는 범재대로 그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범재에게 영재 교육을 강요하는 것은 과정일탈로 정상적 인격형성을 저해하게 된다.
발명왕 토머스 A 에디슨이 공부를 못해 미시건주 포트 휴런서 초등학교를 퇴학당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도대체 영재와 범재의 차이는 무엇일까? 분명한 것은 범재도 영재성이 발견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영재였던 율곡, 범재였던 퇴계 두분 다 문묘에 배향되고 에디슨이 영재가 된것처럼 퇴계같은 대학자나 에디슨처럼 발명왕까지는 될수 없을지 몰라도 지금의 아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아니 지금의 범재 아이들에게도
그같은 위대한 학자가 나올수 있다.
부모의 분별없는 조기교육보다 더 급한 것은 아이에 대한 인간교육이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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