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堂이 웃고 있다

68세의 시인 고은씨는 1958년 「현대문학」지를 통해 문단에 데뷔했다. 데뷔작품은 ‘봄밤의 말씀 ’ ‘눈 ’ ‘천은사운 ’이었다. 지난해 12월 24일 타계한 미당 서정주 시인이 고은씨를 신인으로 추천했다. 미당과 고은시인은 사제지간으로 인연을 맺었고 고은씨는 한때 미당을 일컬어 ‘시의 정부(政府) ’라고까지 추앙했다.

그러한 고은씨가 최근 계간문예지 ‘창작과 비평 ’을 통해 고인이 된 스승이자 선배인 미당에게 맹렬한 공격을 퍼부어 문단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창작과 비평 ’의 ‘ 미당 담론 ’을 통해 미당의 작품, 인생, 철학, 정치 행로 등을 총체적으로 비판, 부인하는 글을 게재한 것이다.

고은씨는“ 상대가 일제든 해방 이후의 집권세력이든 권력의 편에 존재함으로써 시인의 특장인 음풍농월의 가락속에 일신의 안보를 유지했다”고 비판했는가 하면 미당의 대표시 ‘자화상 ’을 놓고 “ 세계에는 오직 나만 있다는 이기주의나 무례한 자아군림주의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1946년에 나온 두번째 시집 ‘귀촉도 ’에 대해서는 “표제시 ‘귀촉도 ’는 내가 보기에 황당무계한 작품이며, 그 시집 안에 적지 않은 시들이 점액질의 언어기교밖에는 볼품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미당에 대한 지리멸렬한 예찬들이나 대중적 추앙속에서 그에 대한 비판도 변증법으로 요청되는 시점”이라는 등 말을 많이 하였다. 고은씨의 ‘미당 담론’이 알려지자 역시 제자인 문정희 시인이 “ 비록 도덕적인 정당성을 가진 정권이라 해도 대통령의 전용기에 앉아 대통령과 함께 공항을 나서고, 한때는 원수라고까지 불렀던 인민복을 입은 최고 권력의 사람과 와인잔을 부딪는 장면을 보면서도 그의 시집을 정독했다 ”고 말하고 “죽은 후에 시인 고은을 향해 누군가 돌멩이를 던진다한들 보석처럼 좋은 시가 그 돌에 깨지겠는가”라고 물었다.

“미당이 누구보다 고은을 편애한다 ”는 말이 문단에서 공공연했었는데 지금 미당 서정주 시인은 저승에서 이 희한한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혔다고 여길까. 아니다. 선운사 근처 주막집에 가서 막걸리를 마시며 육자배기를 들으며 껄껄껄 웃고 있을 것이다.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양심에 어긋나는 일 조금도, 한번도 안할 수가 과연 있는가. 평생 좋은 詩만을 쓴 그런 시인이 있다면 저승에 가서라도 만나 보고 싶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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