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란이 수차에 걸쳐 민주노총의 파업자제를 호소한 것은 김대중 정권을 위해서가 아니다. 권력층이나 유산계급을 위해서도 아니다. ‘사람답게 살고싶다’, ‘상부는 부정부패, 하부는 구조조정’등의 구호를 내걸고 있다. 힘없고 돈없는 노동자의 절실한 절규이긴 하다. 그래야 경제가 산다며 노동자의 작은 밥그릇은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송두리째 빼앗고 더 빼앗으려 한다. 그러는 힘있고 돈있는 위인들의 큰 밥그릇은 송두리째 지키고 있다.
슈뢰더 독일총리의 친동생은 작은 업체의 하수도 설비공으로 일하다가 구조조정으로 실업자가 됐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새 일자리를 구하고 있다고 한다. 의료보험 공단의 무슨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막대한 국민부담금을 손실내고도 끄덕없는 누구의 사돈네 팔촌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이 정부는 입만 열면 개혁을 내세우지만 자체의 개혁성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자신의 개혁은 외면한채 남에게만 개혁의 미명으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이 정부다. 개혁이 지지부진하여 성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이때문이다.
세계적 신용평가 기관인 스탠더드사는 정부의 시장개입이 지나치다며 한국의 하반기 신용등급을 하향 결정할 움직임이다. 정부가 그동안 시장원리를 입버릇처럼 외쳐온 것이 한낱 구두선에 불과함을 입증해 준다. 공적자금은 연간 이자만도 46조원에 이를만큼 산더미처럼 부풀고 재벌정책은 마냥 겉돈 가운데 되레 부메랑을 맞고 있다. 대외경쟁력 강화를 그토록 외쳐왔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의사 결정은 35위, 금융산업 효율성는 43위에 그쳐 준선진국 그룹에서도 바닥권을 밑돌고 있다. 공장 하나를 지으려면 전두환정권때와 마찬가지로 관청을 백번은 오가야 해 그간의 규제혁파 소리가 무색한 가운데 기업이민이 속출하고 있다.
무엇 하나가 싹수 있는 것이라곤 이토록 없지만 그래도 불법파업 자제를 호소하는 것은 김대중정권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대통령의 엄단방침이나 진념재경의 강경책이 겁나서가 아니다. 비록 초가삼간이지만 뭐가 보기싫어 불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이 노동운동의 한계를 떠나 정권 저항운동으로 가는 것은 노동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부도덕한 정권, 무능한 정권을 응징하는 길은 국민을 불안케 하는 과격투쟁이 아니고도 주권행사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총파업이 자제돼야 하는 이유는 명료하다. 국민생활, 국민경제를 위해서다. 정녕 국민과 함께가는 노동운동을 지향하고자 한다면 인내할줄 아는 깊은 성찰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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