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寬宇 선생님

원로 언론인 천관우 선생은 평생을 외곬으로 신문에만 종사하다가 작고하신 분이다. 박정희 대통령 때 청와대에서 문교부장관을 맡아 달라는 간청이 있었다. 특히 육영수 여사가 존경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신문쟁이가 장관은 무슨 장관?”하며 체질에 맞지 않는다면서 고사했다. 그뒤 몇명씩 벼슬길에 들어서는 언론인이 생기더니 5공땐 부쩍 늘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정권마다 정권따라 벼슬을 산 언론인 출신이 꽤나 많다. 지금의 김대중 정부에서도 상당수가 있다.

대구에서 그곳의 모일간지 기자로 경북도청을 출입하던 K가 TK연줄로 큰 벼슬은 아니지만 문공부에서는 괜찮은 언론담당 실세 자리로 들어갔다. 전두환대통령 집권초 무렵이다. 그러고 나서 사이비기자 단속지침으로 시달된 사례가운데 ‘관공서에 이자놀이 하는 행위’라는 항목이 있었다.

당시에는 ‘과비’란 것이 있어 각 실국·과마다 과비가 떨어지면 다음 추경때 갚을 요량으로 사채를 쓰는게 관행이었다. 그러나 그 시달내용을 보고 알만한 사람들이 실소를 금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공문을 내린 장본인이 기자시절에 출입처를 상대로 그 자신이 자행했던 행위였기 때문이다.

언론인출신 관료가 언론의 숨통을 K와는 비교가 안되게 더욱 지능적으로 정책화 해 조이는 것은 그 자신의 경험으로 잘 알기 때문이다. 지금은 모르겠으나 과거의 언론탄압은 이렇게 해서 언론계 출신의 관료에 의해 앞장서 저질러 졌다.

자신이 몸담았던 언론을 표적삼아 강도높은 화살질로 권력에 충성을 보이는 것도 용열하지만 그런 것에 더이상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언론 스스로가 한층 더 건강해져야 한다고 여긴다. 권좌의 낚시밥에 약한 언론인의 생리를 보면서 천관우선생님의 기개높은 신문쟁이의 기질이 한결 그리워진다.

언론 선진국에서도 벼슬자리에 팔려간 언론인이 있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다 늙어 쓸모없는 나 역시 그럴리가 만무한 벼슬의 유혹이 없어 이런 말을 한다 할지 모르지만 후배들에게 만은 신문쟁이의 드높은 긍지를 당부하고 싶다. 정권은 유한해도 신문기자는 영원하기 때문이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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