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행자가 길걷기 겁내는 도시

경기도내 도시의 보행환경이 극히 불량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개발연구원이 지난해 도내 수원 분당 남양주시 등 도시 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보행환경 안전평가 조사 결과 71.4%가 보행에 위험을 느끼고 있으며, 이면도로에서 차량 경적에 놀란 경험도 96.2%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91.7%가 고인 물에 낭패를 당한 일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입체횡단시설의 이용불편으로 무단 횡단한 경험도 77%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마디로 이 조사결과는 도내 도시지역 주민들이 걸어다닐 권리와 걸어다닐 곳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계획도시 또는 대규모 도시가 그에 걸맞지 않게 보행자들이 불편하고 불쾌하기 그지 없는 도시로 일그러져 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건물의 높낮이가 들쭉날쭉 하다거나 변변한 공원하나 없어 도시가 아름답지 못하다는 등의 사치스러운 투정이나 푸념이 아니다. 도시환경의 기본인 도로에서 보행자가 걸어다닐 권리를 잠식당하고 천대받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인도는 각종 공사로 툭하면 파헤쳐지기 일쑤며, 공사가 끝나 덮어놓은 길은 보도블록이 울퉁불퉁해 걸려 넘어질 지경이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이곳 저곳에 물웅덩이가 생기고 용케 피해 디딘 보도블록은 기우뚱 흙탕물을 내뿜기 일쑤다. 그뿐만이 아니다. 도시행정의 기본에서 보행자의 존재 자체가 아예 무시당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공사를 벌였다 하면 행인이 차도로 밀려나기 일쑤고 가뜩이나 넓지 않은 인도를 잠식해 차도를 확장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길가 상점들은 가게앞에 물건을 내놓아 보행에 불편을 주는데도 단속하는 기미는 없다. 주택가 골목은 좌우로 마구 차를 세워놓아 차량과 행인이 뒤범벅돼 통행이 어려운 상태다. 이같이 혼잡한 이면도로나 아파트단지내 도로에서 운전자들은 경적을 울리며 질주해 보행자들을 불안케 하고 있다.

지난해 8월말로 인구 928만명의 경기도에 자동차 보유대수가 240만7천대를 넘어섰다. 이제 자동차 대중화시대에 맞게 운행질서와 법규준수 등 자동차문화 정립이 절실하다. 아울러 당국은 행인이 불편없이 거닐 수 있도록 인도와 횡단보도를 많이 설치하거나 지하차도를 만들도록 노력해야할 것이다. 행정은 다수 시민의 편리위주로 구현되어야 한다. 불편없이 걸어다닐 곳이라도 제대로 확보되면 도시민의 삶의 모습은 훨씬 여유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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