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교실만 지어라?

행정에는 법과 원칙과 예규란 것이 있다. 이를테면 기존의 가치 기준이다. 교육행정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정부의 ‘교육여건 개선 추진계획’이 지닌 졸속성은 이 점에서 심히 우려된다. 대통령의 분부가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게 과연 합당한 것인지 의심된다. 후닥닥 해치워서 되는 일이 있고 안되는 일이 있다. 교육여건 개선도 마찬가지다. 교실만 벼락치기로 많이 짓는다고 해서 선진국 수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2003년까지 교원수를 2만3천600명가량 늘린다지만 초등학교의 경우 학급당 학생수를 35명으로 잡는 그 해에 가면 충원이 불가능하다. 전국 시·도교육감회의에서 제기된 문제점이다. 또 학급을 늘리면 교무실 증축등 증설 수요 또한 감안해야 하는데도 간과했다. 이는 계획결함 이다. 여기에 겹친 졸속성은 불안할 정도다. 전국의 고등학교는 공사판이 될판이다. 도내에는 310개 고교에서 1천60개 교실을 지어야 한다. 오는 9월20일 일제히 착공, 내년 2월까지 완공하라는게 교육부의 지시다. 학교마다 7∼8개 교실에서 15∼16개 교실을 더 지어야 하는데 부지가 마땅치 않은 학교가 대부분이다. 담벽사이 공간이나 운동장을 잠식해 지어야할 학교가 있다. 심지어는 체육관, 과학실험실을 교실로 바꿔야할 지경인 학교도 있다. 운동장, 체육관, 실험실 등을 없애가며 교실만 증축하는 것이 선진국 수준의 교육여건 개선이라고 볼 수는 없다. 만약에 이같은 교실증축이 실정법에 저촉돼 무허가 공사로 짓게 된다면 정부가 불법을 조장하는게 된다.

도대체가 갈팡질팡이다. 언제는 교원을 감축한다며 학급수를 줄이더니 이제는 학급 수를 늘리려니까 교실을 지으라고 야단이다. 그것도 6개월 안에 마치라니 학생들은 2학기 내내 공사속에 시달릴 판이다. 평소에는 학교에서 교실 한 칸을 더 지으려 해도 으례 예산이 없다며 외면해 오던 정부가 대통령 임기내에 17조원을 투입하겠다는 재원은 갑자기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도 궁금하다.

교육환경 개선이나 교실증축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절실하다. 문제는 물리적으로 밀어붙이고자 하는 경직된 인식에 있다. 그보다는 안정된 교원수급, 내실있는 공교육과 더불어 교실 개선작업이 병행돼야 한다. 지금까지 뭣하고 있다가 뒤늦게 벼락치기로 서두르느냐는 말을 들어서는 오히려 역기능이 우려된다. 재임중 치적사업으로 매달리지 말고 짜임새 있는 거시적 안목으로 추진해야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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