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임동원 통일부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가결은 찬성 148표, 반대 119표로 예상보다 압도적인 표차가 난 점이 눈에 띈다. 이적단체 구성원의 방북 위장신청 승인 및 사전교신 묵과로 기인한 반국가적 돌출행위를 유발한 결과를 가져온 것은 사전 책임이며, 법무부가 낸 관련 인사의 방북불가 통보를 마치 합의가 있었던 것처럼 국회에서 거짓말한 것은 사후책임에 해당한다.
이같은 임장관의 책임은 장관선이 아닌 정권 핵심부에서 책임의사를 밝히지 않는한 통과는 불가피했다고 보는 것이 본란의 판단이다. 또 북측이 5개월여동안 중단된 당국자회담 재개를 밝혀온 것은 환영할만 하나 하필이면 국회표결 전날 제의한 점은 우연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즉, 임장관 구출을 위한 정풍(政風)의 신북풍 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해임을 반대하는 입장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다.
해임건의안 가결로 주목되는 것은 향후 정국의 운영이다. 정가의 예상대로 이로써 DJP공조가 깨진다고 보는 것은 일반적 상식이다. 그러나 예상을 뛰어넘는 게 또한 정치다. 실제로 DJP 결별은 DJ로서는 정면돌파에 여소야대, JP에겐 독자기반 취약의 부담을 안고있다. 특히 DJ는 임기말에 레임덕을 가속화할 수 있으며, JP는 이번에 비록 보수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긴 했으나 당장 ‘한·자동맹’으로 이어지는 훼절에는 국민의 눈을 의식해야 하는 부담이 크다. 이렇긴 하나, 또 정치권 개편의 빅뱅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내년에 대통령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표결과 공조’는 별개라는 JP의 유보적 태도, 그리고 표결과 공조에 대해 끝까지 말을 아낀 DJ가 벼랑끝 한계점에서 이제 어떤 생각을 드러낼지 주목된다.
정치권 일각에서 나온 해임안 통과의 법률적 기속력 거론은 무의미하다. 대통령중심제의 임면권 존중 뜻에서 헌법 조문에 ‘건의’로 표현된 국회 표결 결과를 무작정 묵살하는 것은 국회 권능의 헌법정신에 크게 위배된다. 또 임동원 장관을 청와대 특보로 임명하고 통일부장관에 박지원 청와대 수석을 기용할 것으로 보는 관측이 있다. 국회에서 해임이 건의된 장관을 다른 중책에 전보하는 것은 도덕성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나 누구를 어떻게 쓰든지 대통령의 책임에 속하는 고유 권한이므로 더 말하진 않겠다. 국회의 건의를 조속히 받아들이는 한편, 곧 열릴 올 정기국회를 유념하기 바란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민생을 더 어렵게 만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정치권 지각변동의 회오리 바람이 일어도 민생을 보듬는 정부, 정치권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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