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환담

1917년11월7일은 볼셰비키가 케렌스키 과도정부를 마침내 타도, 러시아 혁명을 완성한 날이다. 당시 군사평의회 의장이었던 페테르스 부르그는 ‘나의 생애’라는 자서전에서 그 날의 레닌을 이렇게 말했다. ‘국가 권력은 탈취됐다! 레닌은 아직 와이샤츠를 갈아입을 틈도 없었다. 그는 동지들간의 친근성을 나타내는 일종의 수줍은듯한 어색한 표정으로 나를 상냥스럽게 처다 보았다. “여보게”하고 주저하듯이 말을 꺼냈다. “이렇게 빨리 박해와 지하생활로부터 권력에로 이행한다는 것은…”하고는 목이메어 말문을 닫았다. 그리고 갑자기 “현기증이 난다”면서 자기 머리를 손으로 둥들둥글 쓸어 만졌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처다보면서 한참동안 미소지었다 ’볼셰비키가 러시아 공산당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이듬해 3월에 가진 당대회에서 였으며,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 연방공산당으로 바뀐 것은 1925년이다.

소련이 붕괴된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러시아 혁명기념일 또한 ‘화해일치의 날’로 명칭이 바뀌었다. 어느 중앙지 모스크바 특파원이 전한 지난 7일의 현지 소식이 흥미롭다. 공산주의 지지자들은 푸틴반대의 구호를 외치면서 행진했는가 하면, 젊은이들은 청소의 날 행사를 갖는 등 다양한 집단이 여러 목소리를 내는 자유를 구가했다는 것이다. 쿠바도 관광사업 개방으로 자유의 바람이 일고 중국, 베트남 역시 시장경제로 한해가 다르게 현대사회화 하고 있다.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만 유독 잠궈둔 빗장문을 좀처럼 잘 열지 않는다.

지난 8일 제6차 남북장관(상)급 회담이 열린 금강산여관에서는 남북의 두 대표가 저녁에 환담을 나누면서 촛불을 켜야만 했다. 정전이 됐기 때문이다. 참 이상하다. 정전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듯한 북측 사람들을 의연하게 봐야 할 것인지, 아니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로 보아야 할 것인지 헷갈린다. 개방과 개혁을 고집스럽도록 거부하는 저들에게 변화가 언제쯤이나 있을 것인지 생각할 수록 머리가 무겁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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