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었다고 집에만 쳐박혀 있으면 치매에 걸려. 나이가 많건 적건간에 사람은 일을 해야돼.”
성남 모란장 초입 화훼부 한켠 구석에 자리를 튼 터줏대감 이치복옹(91)은 모란장 상인중 최고령자로 유명하다.
이옹의 고향은 황해도 신천. 1·4후퇴 때 아내와 함께 월남한 후 ‘무자식이 상팔자’라며 자식없이 아내와 단둘이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20여년간 식료품 도매상을 해오다 지난 80년대초 성남으로 이사와 화초를 팔며 생활하고 있다.
지난 83년 아내와의 사별후 실의에 빠진 이옹은 술과 담배를 끊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왔다. 장이 없는 날이면 전국 명산은 다 찾아다니며, 자연을 아내삼아 지낸다.
아흔이 넘은 고령의 나이에도 이옹은 50∼60kg은 돼 보이는 매화나무 화분을 번쩍번쩍 들어 옮긴다.
“이 정도도 못 들면 죽어야지. 숨이 붙어있으면 사람 노릇하며 사는 것이 정상이여. 이병철이고 정주영이고 다 죽으면 그만이잔여.”
“2천원, 3천원, 9천원…6만원.” 이옹은 물건값, 돈계산을 척척 하며 손님들을 맞는다.
장이 서는 날 이옹을 찾아오는 손님은 줄잡아 1천여명. 모란장에서 20여년간 자리를 트고 장사를 하다보니 소문을 듣고 찾아오든가, 노령의 할아버지가 장사하는 모습이 신기해서인지 발길을 멈췄다는 손님이 대부분이다.
“단골손님이 100명이 넘어. 다른 사람들은 이 장 저 장 옮겨다니지만 나는 모란장에서만 팔아. 그러니 단골이 많을 수밖에.”
이옹은 특히 수원 권선갈비집 주인은 모란장에 올 때마다 음식을 싸들고 온다고 은근히 자랑한다.
철죽, 군자란, 천리향, 작약 등 수백종의 화초중에서도 ‘장수매’가 가장 좋다는 이옹의 정정하고 꼬장꼬장한 모습이 모란장의 또하나의 명물이다.
/고영규기자 ygko@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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