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은 오전 4시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파루(罷漏) 소리에 기상했다. 파루를 신호로 남대문, 동대문, 서대문만 열리는 게 아니라 백성에게 모범을 보이려 왕까지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수라(아침 식사)전에 쌀죽인 죽수라를 가볍게 들고 12개 접시에 탕, 찜, 전골 등 반찬을 담은 12첩 반상을 받은 뒤 곤룡포를 입고 외전으로 나갔다.
왕의 공식업무는 조회, 국정 현안 보고 받기, 회의 주재, 신료 접견 등이며 하루 세차례 공부를 하도록 돼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왕은 편전에서 왕의 비서인 승지가 접수해 미리 검토하고 요약해 놓은 공문서에 결재하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처리할 문서가 많아 붓으로 일일이 결재하기 힘들면 내시에게 계자인(啓字印) 이라는 도장을 찍게 했다.
오래 앉아 공문서, 상소문을 보며 눈을 혹사했기 때문에 조선시대 왕들은 3대 태종 때 부터 눈병과 종기를 유전병처럼 달고 살았다. 정조(正祖)의 경우 큼직한 벼루만한 종기가 등 전체에 퍼져 서너되의 피고름을 쏟기도 했다고 한다. 왕들은 고단백 식사를 하면서도 운동량은 부족해 비만, 당뇨, 고혈압 같은 성인병에 시달렸다.
왕의 일거 일동은 ‘승정원 일기’에 모두 기록됐다. 공식적인 업무가 시작되는 아침부터 업무를 마치는 밤까지 승정원(오늘날의 대통령 비서실)에서 왕을 중심으로 행해지는 일체의 일을 기록한 승정원 일기는 왕의 행적과 신하들의 대화내용을 속기 형태로 적었다. 조선 초기의 승정원 일기는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고 인조(仁祖)원년부터 순종(純宗)때까지 272년간의 기록만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돼 있다.
승정원 일기의 첫 문장은 언제나 ‘오전에 맑았다 오후에 흐린 날’등 날씨로 시작되며 왕의 건강과 감정 등 인간적인 모습도 묘사해 놓았다. 왕들의 생활은 알고 보면 이렇게 고달프기 짝이 없었다.
대통령을 왕으로야 비유할 수 없지만 그래도 권력자라고는 할 수 있다. 요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가엾은 위인들이다. 승정원 일기처럼 청와대 일지는 제대로 쓰고 있는지 걱정스럽다.
淸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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