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광복이후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정치에 참여했다. 조국 광복을 위하여 몽매간에 목숨 바쳐 독립운동을 한 분 들이다. 그토록 소원하던 조국 광복을 이루었으니 나라와 민족을 위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독립운동가들의 정치참여는 대부분 실패하고 말았다. 여기에 굳이 실명을 거명하진 않겠으나 건국에서 건국 이후의 정치활동에 좋은 결과를 낸 분들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독립운동가의 정치참여가 이처럼 성공하지 못한 것은 학문적 연구과제가 될 만하다. 어떻든 그 이유로 독립운동과 정치는 다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독립운동은 저항운동이다.
독립운동가는 곧 투사인 것이다. 이에 비해 정치는 저항운동이 아니다.
건국후 독재정권에 저항한 민주화운동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장구한 민주화운동 끝에 집권한 분들이 있다. 그러나 그 분들의 집권이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김영삼 정권이 그러하고 김대중 정권도 마찬가지다. 독재정권에 저항한 분들의 집권은 마땅히 성공한 정권이 돼야 하는데도 실패한 정권으로 낙인 찍히는 이유 또한 그 분들 역시 투사 출신들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투사형으로 이루어지는게 아닌 엄연한 사실을 일깨워 준다.
테크네트로닉 시대다. 비분강개하거나 저항 의지만으로 되는 정치시대가 아니다. 현대 정치, 미래 정치는 더욱 더 테크노크라트층을 필요로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세분화하면서 전문화 하고 있다. 권모술수적 정치 개념은 이제 국리민복을 위해 아무 할 일이 없다. 실사구시의 정치개념이 각 분야에 기여를 요구받는 시대다.
요즘 여야의 대통령후보 경선을 보면서 새삼 그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세계는 지금 나라마다 다투어 실리주의 추구로 적극 가고 있다. 이 와중에서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다음 집권자는 투사형일 수 없다. 저항적 투사 개념의 소유자 보다는 실사구시에 능한 전문 개념의 통치자가 필요한 시대다. 민주당, 한나라당의 대선후보 경선 관전은 이런 점에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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