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패왕 항우가 해하의 대회전에서 유방휘하 한신에 의한 사면초가의 포위망을 간신히 뚫고 도망쳤을 때의 일이다. 양자강의 오구에 이르러 돌아보니 따르는 장졸수가 겨우 28기 뿐이었다. 오구의 면장격인 정장이 서둘러 강을 건널 배를 마련했다. 양자강만 건너면 고향땅인 강동인 것이다. 그러나 항우는 강을 건너지 않고 추격한 한신의 군사를 맞아
자결했다. 항우의 자결은 패왕으로 천하를 호령하던 그가 자신이 왕으로 임명한 한중왕 유방에게 패한 좌절감 때문이었다.
막강한 권력을 마구 휘두르다가 권력을 놓치면 견디기 힘들게 만드는 것이 자고로 권력의 속성이다. 돈을 잘 쓰던 부자가 망하면 돈 없는 이보다 더 견디기가 힘드는 것과 같다.
김대중 정권의 임기말이 너무 걱정스럽다. 청와대와 그의 가족들 주변이 온통 부패의혹으로 뒤덮였다. 얽히고 설킨 권력형 비리의 미로가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국민들이 되레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다. 그러고도 큰 소리 친다.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책임은 커녕 의혹 부풀기라며 오히려 적반하장이다. 아직은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이란 이래서 좋은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영원한 권력은 없다.
이 정권도 불과 10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권력의 정상 그리고 권력의 상부층, 중간층, 하부층에서 나름대로 정권을 믿고 권력을 남용해온 이들의 권세 역시 1년도 못돼 허무하게 사라진다. 권력을 의무로 알고 행사한 권력자는 권력을 내놓는 것을 마음 편하게 여긴다. 반대로 권력을 탐욕스럽게 행사한 권력자는 권력을 내놓는 것이 두렵게 여겨진다. 권력의 남용은 법에 의한 법치가 아니고 사람에 의한 인치의 소치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는 장차 자신이 권력에 의해 응징당할 이도 없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정권의 부패상이 해도 너무한다는 것이 한결같은 사회정서다. 사면초가 속에 있으면서도 권력에 근신할 줄 모르는 이 정권의 권력꾼들 말로가 어떨지 궁금하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은 시정의 잡배가 아니라, 권력의 잡배들이란 생각을 갖게 한다.
/白山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