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진솔해야 한다. 그래야 듣는 상대에게 감동을 준다. 감동을 주지 못한 사과는 결국 사과라 할 수 없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가 이런 의문에 속한다. 사과는 대통령이 직접 나선 육성이었어야 그래도 어느 정도의 호소력을 기대할 수가 있었다. 가뜩이나 네가티브의 사회정서가 강한 박지원 비서실장을 통해 그것도 발표문이 아닌 성명 형식을
취한 것은 우선 걸맞지가 않다.
대통령 자식들에 대한 검찰 수사의 엄정처리 다짐은 원론적 수준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 현철씨가 한보사태에 관련됐을 당시 DJ가 구속을 촉구했던 것처럼 자신의 자식들에 대한 구속수사도 불사한다는 언질이 있었어야 진솔하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대통령 내외가 자식들 일로 “고민의 나날을 보낸다”는 말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객담이다. 사과로 받아 들이기엔 공허하다. 홍걸씨의 유상부 포스코회장 만남이 이모여사 주선에 의한 것이라는 의혹까지 나온 마당엔 더 말할 게 없다.
민주당 탈당은 당적만 버린다고 하여 되는 게 아니다. 여·야의 협력을 얻는 가운데 오직 국정에만 전념하기 위해서는 정치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가 돼야 한다. 민주당 당적 보유의 국무위원들로 하여금 조만간 탈당케 한다고 하여 대통령이 자유롭게 되는 건 아니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내각을 조각 차원의 중립 또는 거국내각으로 개편하는 강한 의지를 실증해 보여야 한다. 그런데도 대통령 성명을 대독한 박실장은 중립내각 구성을 일축했다. “현 내각도 중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고 있다”는 견강부회는 설득력이 없다.
내각 개편만이 아니다. 청와대 비서실도 개편돼야 한다. 정치색 짙은 정치꾼들이 대통령 주변의 중책을 맡고 있어선 대통령이 정치로부터 자유롭다는 객관적 동의를 얻기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의문의 시선이 없지 않다. 탈당이 아니라 민주당의 간판을 바꿔단다 해도 인과응보상 당과 노무현 후보의 DJ 부담이 없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모처럼, 그리고 기왕 결단을 내린 대국민 사과라면 새로운 면모를 보고자 했던 기대가 무산된 것은 지극히 유감이다. 더 지켜보며 기대를 아주 저버리지는 않고자 한다. 무엇보다 이젠 욕심을 버리는 무욕유상의 해탈만이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실을 간곡히 일러둔다. 이미 성공한 대통령도 임기 말을 욕되게 할 수 있는가 하면, 이미 실패한 대통령도 임기 말은 좋게 할 수가 있다. 본란이 밝힌 고언은 나라와 대통령을 위한 꾸밈이 없는 충정임을 헤아려 주기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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