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준과 포스코

1968년 포항종합제철을 세우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박태준 대한중석 사장에게 포철사장 자리를 맡겼을 때의 일이다. 이에 앞서 육군 소장으로 예편하기 전엔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 비서실장, 상공담당 최고위원 등을 지냈다. 박태준은 박 대통령의 제의에 묵묵부답으로 있다가 세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는 포철 인사에 외부의 개입을 일체 거부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외부의 자재 수납에 일체의 청탁을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셋째는 뭔가?”박 대통령이 다그치자 “각하! 저를 믿으시면 증표를 하나 써주십시오!”라고 했다. 첫째, 둘째조건이야 이해할 수 있으나 난데없는 ‘증표’란 말엔 박 대통령도 의아해 했다.

박태준은 물러서지 않았다. “각하! 제가 서울에 없으면 필연코 모함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저를 믿고, 또 저의 신념대로 지방에서 일할 수 있게 보장해 주실 뜻이 있으시면 증표가 필요합니다”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여 미소 지으며 “그럼, 임자 말대로 하지!”하고는 ‘박태준 동지’라는 휘호를 신표로 써주었다.

박 대통령이 그런데는 사연이 있었다. 박태준이 지휘관 시절 병영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김치가 덤덤한 게 도무지 맛이 없었다. 고춧가루를 더 가져오라고 해 버무렸으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춧가루를 두 손가락으로 집어 비벼 봤다. 가짜였던 것이다. “우리 아들들 먹는 음식에 웬 가짜 고춧가루냐…”며 당장 납품을 끊어버렸다. 납품업자가 몇번 찾아 사정 사정했으나 냉담했다. 나중엔 “그렇게까지 할 게 뭐가 있느냐”며 “후회할 것”이라는 협박까지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상부에서 압력이 있었으나 자리를 걸고 끝내 거부했다. 박 대통령은 일찍이 이런 면모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포항제철이 오늘날 세계적인 철강업체로 성장한 것은 박태준이 25년동안 철강인으로만 정열을 쏟은 헌신의 결정체다. ‘철의 사나이’박태준 포스코(포철)명예회장(전 국무총리)이 며칠전 일본 등지서 귀국하면서 전·현직 임원들을 인천공항에 불러 최규선 게이트 외압과 관련된 포스코의 불명예를 크게 꾸짖었다. “창업자로서 도저히 용서 못할 포스코 사상 중대한 오점”이라면서 관련자들의 책임을 촉구한 것은 그의 권리며 의무다.

/白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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