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꾼들

白山

1960년 제2공화국 시절이다. 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제5선거구 시의원 후보로 나섰다. 가까스로 피선거권을 지닌 25세 때다. 당시 서울시장엔 ‘카이제르 수염’으로 유명했던 김상돈씨(구 민주당)가 당선됐다. 서울시의회 의장에는 내 선거구에서 당선된 한상기란 분이 뽑혔다. 이밖에 영천(무악재)고개 안쪽 선거구에서 당시의 정계 중진 김산 국회의원(구 민주당)의 지원을 받고 나온

김재광씨(전국회부의장)가 당선됐었다.

나의 선거구는 영천고개 너머 홍제동, 자하문 밖 홍은동 부암동등 일원이었다. 다섯명이 출마한 가운데 제비로 뽑은 기호가 2번으로 꽤나 마음에 들어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양손의 인지(人指)와 중지(中指)로 V자를 꼽으며 양팔을 들어 ‘3V’를 그려 보이곤 했었다. (근래 노아무개가 이러는 것을 보곤 한다)

무소속으로 나왔다. 물론 당선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대중연설회 등을 통해 절규하고 싶은 말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 많았었다. 민주당(구)정권의 무능을 질타하며 국가의 변혁(5·16군사혁명)을 예언하기도 했다. 그 무렵 서울중앙방송국 (KBS전신) 해설위원이었던 정문원후보는 ‘나를 안찍으려거든 이런 젊은이를 찍어달라’고 한 적이 있다.

선거구호는 ‘무산계급에서 나온사람, 무산대중이 밀어주자’는 것이었다. 1공화국이나 3·4공화국 같았으면 몇번쯤 붙잡혀 가 치도곤을 당했을 정도로 진보성향이 다분했다. 이때문에 국내 보수정당 제1호인 한국민주당(민주국민당∼구 민주당의 전신)당원이었던 선친의 노여움을 샀다. (그 후로는 세대따라 일부 젊은이들의 진보적 성향을 볼땐 나의 과거를 돌이켜 보곤 했다. 지금은 중도보수의 생각을 갖고

있다)

케케묵은 옛날 얘기를 새삼스럽게 꺼내는덴 이유가 있다. 선거판은 어떤 선거든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 게 안타까운 생각에서다. 선거문화가 40여년 전에 비해 조금도 성숙되지 못한채 여전히 돈타작 놀음이다. 6·13 지방선거가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별 희한한 소리가 다 들렸다.

나는 그때 투표일을 단 며칠 앞두고 후보를 사퇴해 버렸다. 이른바 선거운동원과 후보자를 포함한 선거꾼들 속에 나자신이 ‘선거꾼’이 되어가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뒤론 투표는 하지만 ‘선거꾼’은 경멸한다. 지방선거 선거사범 수사가 본격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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