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河
‘노숙자(露宿者)’는 서구의 홈리스(homeless)를 차용한 용어라 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홈리스’를 ‘학교, 교회 지하실 등 응급쉼터를 이용하거나 길거리, 공원 등 주거지가 아닌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노숙자에 대한 법적 근거도, 공식적인 개념정의도 없다. 한국도시연구소가 정의한 노숙자는 ‘실제로 노숙하거나 노숙에 가까운 불안한 주거상태에 있는 사람들 ’이다. 노숙자는 글자대로 하면 길거리 등 집이 아닌 곳에서 자는 사람들을 말하지만, 정부의 노숙자 서비스는 대부분 자유의 집 등 쉼터 생활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노숙자는 근로능력을 소유하고 자활의지가 있다는 점에서 부랑인과는 구분된다. 최근에는 노숙자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노숙인’으로 칭하기도 한다.‘집이 아닌 곳에서 자는 사람(인·人)’이라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는가. 집이 아닌 곳에서 자는 ‘사람’이 되레 욕스럽다.
쉼터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순우리말인 ‘떨꺼둥이(의지하고 지내던 곳에서 쫓겨난 사람)’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그렇다. 옳은 말이다. 노숙자는 떨꺼둥이다. 이 나라 이 정부가 멀쩡한 가장들을 집에서 거리로 내몰았다.1997년 IMF 관리체제 편입과 함께 나타난 사회문제 중 하나가 노숙자의 증가다. 1997년말부터 대도시 역사를 중심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노숙자는 1998년 11월 4천120명이던 것이 1999년 2월 6천312명으로 최고조에 달했다. 보건복지부의 자료이니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게 분명한데 2002년 6월엔 4천256명이라고 했다. 노숙자의 연령층은 40대가 37.5%로 가장 많다. 30대는 23.7%, 50대는 23.1%다. 노숙자중 남자가 93.6%라니 여자도 6.4%나 된다. 남자도 비참한데 여자가 노숙을 하다니 끔찍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보건복지부가 노숙자 관련 정책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면서 노숙자를 부랑인에 포함시켰다. ‘부랑인’의 정의를 ‘일정한 주거와 생업없이 거리를 배회하거나 구걸하는 자’에서 ‘일정한 주거와 생업없이 거리를 배회하거나 노숙하는 18세 이상의 자’로 변경한 것이다. 말썽이나자 부랑인 개념에 노숙자를 제외하겠다고 밝혔지만 ‘IMF사태의 유민(流民)’인 노숙자가 하마터면 부랑인으로 전락할뻔 했다. 한국의 법안추진은 이렇게 신뢰가 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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