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河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1897∼1972)화백의 그림앞에 서면 편안하다. 그리운 대상이 너무 많아 쓸쓸해지기까지 한다. 미술평론가 유흥준 명지대 교수는 청전의 작품에 펼쳐진 산수화를 “우리의 기억 어딘가에 있는 미지의 고향”이라고 한다. 과연 그러하다. 청전의 그림은 이 땅의 산과 들, 거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 둘 보인다. 언덕배기에 초가 한 두채가 키 큰 나무 뒤에 마치 숨어있는 듯 하다. 적요한 풍경이다. 시선을 화폭의 다른쪽으로 돌리면 나무짐을 지게에 진채 허리를 꺾고 걸어가는 초부(樵夫)가 보인다. 황소에 등짐을 얹혀 이끌고 가는 농부, 혹은 머리에 인 함지박을 한 손으로 잡고 가는 촌부의 잰걸음도 나타난다.
청전은 옆으로 길게 퍼지는 수평 구도를 즐겼다. 산세의 완만한 곡선이 죽 펼쳐진 화면을 따라가는 시선을 보는 이를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청전은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출생 이듬해 부친을 잃고 9살때 가족과 서울로 왔다. 보통학교 4학년을 마치고 1914년 서화미술회 강습소로 들어갔다. 여기에서 조선의 마지막 대화가들인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과 소림(小琳) 조석진(趙錫晉)을 스승으로 만났다. 1912년 제1회
서화협회전으로 화단에 나온 이후 1922년 열린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선전) 출품 이후 연10회 입선과 특선을 차지했다.
1936년 8월25일 동아일보는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소식을 보도하면서 일장기를 지워버린 사진을 신문에 실었다. 일장기를 지운 사람은 청전이다. 당시 그는 동아일보 학예부 미술기자였다. 일본경찰에 끌려가 온갖 고초를 겪었음은 물론 그 이후 10년간 사실상 칩거했다.사람들은 청전을 겸재(謙齋) 정선(鄭敾)이후 최대의 작가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러나 정작 청전은 생전에 “우리의 그림에는 우리의 분위기가, 우리의 공기가, 우리의 뼛골이 배어져야 한다. 감히 나는 훌륭한 그림을 그렸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적인 그림을 그렸다고는 생각한다. 내가 그린 산수나 초가집들은 우리나라가 아니면 찾아볼 수가 없는 세계이다”라고 말했다.
청전의 30주기를 맞아 6일부터 10월 6일까지 ‘청전 이상범의 진경산수전’이 서울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다. ‘산가청운(山家淸韻)’ 등 30점도 첫 공개된다. 이 가을에 청전의 산수화 정취에 젖어봄직 하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