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남(리서치월드 앤 컨설팅 대표 )
지방자치시대가 이전의 관선 지방행정 시대와 다른 점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자치실험’이라고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자치실험’은 중앙의 잣대로 재단하고 포장한 붕어빵 행정시책을 일선 시·군이 일사불란하게 시행하던 관습과 구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역의 특성과 특기를 살리는 것이되 결코 ‘시책남발’이나 ‘즉흥시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10여년의 지방자치 과정에서 우리는 부끄럽고 안타까운 자치정책의 실패를 지켜봐야 했다. 지방자치단체가 내세우는 그럴싸한 시책들을 잘 들여다보면 허울뿐인 껍데기인 경우가 한 둘이 아니다. 재탕삼탕 정책은 고사하고 심지어 구체적 실행목표나 프로그램도 없이 등장하는 립서비스(lip service) 정책도 있다.
이런 ‘즉흥정책’은 일단 제목만 만들어 발표되고 나서야 자료조사를 한다, 계획을 세운다 난리법석을 떤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러 툭툭 터져 나오는 이상한 시책들은 주민들은 물론 공무원들마저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이런 ‘나홀로 정책’이 남발되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주민의 의견을 무시한 독선적 밀실 정책결정이 빚어낸 결과이다. 이건 마치 집을 짓는데 설계도 없이 나무에 문패만 걸어 놓고 집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다. 그런 정책이 제대로 될리 만무하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인스턴트 정책’은 민선 지방자치시대에 출몰한 신어용집단(新御用集團)에 속한 일부 학자나 전문가들이 깊은 고민없이 뱉어내는 천박한 지식에 기초를 둔 ‘아부성 아이디어’와 주민을 무시하고 공무원을 불신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의 ‘독선적 선민의식(選民意識)’에서 비롯된다. 실무 부서 담당자들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즉흥적 인스턴트 정책이 뜸이 잘 든 정책에 비해 맛도 없고 영양이 덜한 것은 당연하다. 공무원들도 모르는 준비 안된 정책이 주민에게 제대로 사랑 받을 리 없다.
한 정책이 탄생하려면 현실의 문제인식에서 출발하여 주민의견수렴, 비용편익분석 등 비교 분석과정을 통해 선택 가능한 몇 가지 대안 중에서 최적안을 골라 세부실천전략을 만들어 실행하고 중간-최종평가와 환류(feed back) 등 시스템적 정책산출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도 민선 지방자치이후 주민의견수렴과 타당성분석, 충분한 실천전략 없이 시책의 제목만 미사여구로 화장을 한 채 시책이랍시고 등장하는 것이 비일비재하다.
주민의 의견수렴과 충분한 검토와 준비없이 쏟아져 나오는 나홀로 정책, 인스턴트 정책은 이미 실패를 안고 시작하는 잘못된 출발이다. 결국 정책실패의 책임은 슬그머니 실무 공무원에게 전가되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으로 남게 된다. 이러한 부실정책 생산을 감시하는 1차 의무는 의결권과 행정사무감사 및 조사권을 가진 지방의회에 있다. 공직협도 편한 요구에만 안주할 것이 아니라 이런 엉터리 정책에 제대로 딴지를 걸고 나서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선거용 ‘인스턴트정책’을 추방하고 제대로 ‘숙성된 정책’을 함께 만들어 내는데 모두가 할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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