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컬럼/이토록 순박한 국민을 속이는 이 정권
임양은 논설위원
지난 8월 태풍 루사가 한반도를 강타할 무렵, 독일 역시 대홍수가 덮쳤다. ‘100년만에 겪는 최악의 홍수’라고 그들은 말한다. 재해는 특히 옛 동독지역이 더 심해 동서화합의 계기과 됐다. 옛 서독지역이 중심이 된 자원봉사자들이 옛 동독으로 줄을 이었다. 흥미로운 건 모래주머니다. 수방용으로 요긴하게 만들어 쓴 모래주머니가 물이 빠지고 나니까 골칫거리가 됐던 것이다. 무게가 20∼30kg이나 되는 모래주머니는 오염에 찌든 심한 악취로 그들 입장에선 땅에 묻을 수도 없었다. 이런 모래주머니가 무려 4천만개가 넘었다. 그러나 한 소방대의 기지로 손쉽게 처리됐다.
2002년 대홍수 때, 할아버지의 활약상을 손자에게 전할 수 있는 실물 기념품으로 팔기 시작한 것이 대호응을 얻으면서 널리 파급했다. 우리 돈으로 개당 5천800원에 팔린 모래주머니는 저마다 깨끗이 씻어 보관하고, 지방정부에선 모래주머니 판 돈을 망외의 수해대책 재원으로 보태 쓸 수 있게 됐다.
우리에게도 올 여름은 유별나게 잔인했다. 두어차례 거듭된 태풍은 루사가 휘몰아 치면서 무려 7조∼8조원의 피해를 냈다. 재산을 잃거나 가족 중 희생자를 낸 수재민이 7만3천여가구에 달한다. 국민은 저마다 수재의연금을 냈다. 실의에 빠진 이웃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싹 틔워주기 위한 성금행렬이 줄을 이었다. 초등학생의 돼지저금통에서부터 할아버지의 쌈지돈에 이르기까지 정성을 모았다. 50여일동안에 1천296억원이 모아졌다. 수재의연금 모금 사상 가장 많다. 모금엔 일반 국민과 학생등 780만여명, 4천여 기업 및 단체 등이 참여했다. 각종 생필품 등 250만여점도 모아졌다. 연 43만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수해 현장에서 수재민들을 도왔다.
국민은 이토록 순박하다. 정부가 재난을 당하면 재해대책에 쓰도록 세금을 낸다. 적십자회비도 낸다. 그러고도 또 성금을 낼 줄 안다. 이중 삼중으로 내면서도 불평 한마디가 없다. 모금기간 중 어느 당국자는 “좀 더 많은 성금이 필요하다”고 말해 비위를 뒤틀리게 했지만 그래도 냈다. 수재민을 위해서다. 수재의연금은 거의 연중행사가 됐다. 그래도 냈다. IMF사태 땐 금붙이도 낸 국민이다.
금을 내라하면 금을 내고, 돈을 내라하면 돈을 내는 이토록 순박한 국민을 속이는 자들이 있다. 국민을 다스리는 이 정권, 이 정부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떡 주물듯한 수천억원대 검은돈의 이모 게이트, 정모 게이트, 진모 게이트 등 권력유착형 게이트 의혹이 꼬리를 이었다. 그 때마다 이 정권, 이 정부 사람들은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무관하다고 했으나 그 치부가 드러났다. “내가 죽으면 애국가를 4절까지 불러주고 태극기로 관을 덮어 달라”던 안모 전 국세청장은 거액의 탈세 및 독직혐의가 드러나자 미국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다. 대통령의 아들 비리와 연루된 최모 총경 등 미국으로 줄행랑 친 비리 관련자는 이밖에도 많다.
김대중 대통령의 두 아들 비리만 해도 그랬다. 처음에는 허무맹랑한 뜬소문이라고 했다. 근거없는 정치공세라고 했다. 아버지 되는 대통령 조차 “그런 일이 없다”라고 했다. 그토록 감싼 대통령의 두 아들이 감옥에 갔다. 뭐 하나 처음부터 잘못을 시인한 거라곤 아무것도 없다. 예를 더 들자면 실로 허다하다. 이 정권, 이 정부 사람들은 지금도 그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의 4억달러 뒷거래 지원의혹도 덮어놓고 아니라고만 우긴다. ‘대통령 흔들기’라며 되레 역정을 냈다. 여전히 ‘애국가를 불러달라’는 식이다. ‘태극기를 덮어달라’는 식이다.
공정위가 왜 현대상선에만 부당 내부거래 조사를 안했는 지 등등 수없이 제기되는 의문은 외면한 채 덮어놓고 잡아 떼기만 한다. 걸핏하면 남의 계좌추적을 밥먹듯이 해대면서 유독 현대상선 계좌추적은 불법이므로 못한다고 큰 소리 친다. 천하에 이처럼 부도덕한 정권, 윤리를 어기는 정부가 또 어디에 있을 것인지 궁금하다. 이 정권, 이 정부의 비리증후군은 이외에도 공적자금 남용 등을 비롯해 쌔고 쌨다. 이 정권, 이 정부의 거짓말을 가려내기 위한 ‘김대중 정권 비리특별조사위원회’가 나중에 구성되지 않을는 지 모를 지경이다. 명색이 ‘국민의 정부’란 게 반대로 국민의 분노를 산 정부가 됐다. 독일이나 우리나 다 같이 순박한 국민이긴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독일 국민들에겐 희망이 있고 우리의 국민에겐 희망이 없다. 독일의 위정자에겐 진실이 있고 우리의 위정자에겐 진실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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