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광복절특사’(감독 김상진)의 개봉(21일)을 며칠 앞두고 만난 주연배우 설경구(34)와 차승원(31)의 표정은 의외로 느긋했다. 아무런 대책없이 무작정 교도소 담아래를 뚫고 나온 극중인물 재필과 무석의 태도와 꼭 닮았다.
“흥행이요? 저희들이 어떻게 알겠어요. 잘 되면 좋은 거고, 안 돼도 할 수 없는일 아니겠어요.”
설경구가 올해 스크린에 얼굴을 내미는 것은 ‘공공의 적’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 ‘오아시스’에 이어 네번째. 다작배우로 찍히는 것이 부담스러운지 손사래를 치며 말문을 연다.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는 99년 말 개봉된 ‘박하사탕’보다 먼저 찍은 작품이에요. ‘공공의 적’도 지난해 촬영을 끝냈고 ‘오아시스’도 작년에 시작했으니 출연작은 한편 반인 셈이지요. 앞으로 언제 새 작품에 들어갈지도 몰라요.”
그의 차기작은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 아직 오픈세트를 지을 섬을 구하지 못해 크랭크인 일정도 잡아놓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으로 본격 코미디 영화에 출연한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영화 장르가 코미디인 것은 분명하지만 코믹 연기를 했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다”고 답한다. 일부러 웃기려고 하면 오히려 관객들에게 부담감만 준다는 진리를 이미 깨달은 눈치다.
패션모델 출신의 차승원은 2000년 ‘리베라메’로 비로소 배우의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그 뒤 관객들의 뒤통수를 치듯이 코미디 배우로 파격 변신, ‘신라의 달밤’과 ‘라이터를 켜라’로 흥행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그동안 사람들이 저를 보는 나와 실제의 내가 많이 달랐던 모양이에요. 저는 자연스럽게 연기했거든요. ‘신라의 달밤’에서 이번 작품까지 한 작가(박정우)가 계속 시나리오를 맡다보니 이미지가 비슷하다는 이야기도 듣는데 저와 닮은 구석이 많기 때문일 거예요.”
그는 설경구와 달리 ‘광복절특사’의 촬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선생 김봉두’(감독 장규성)가 크랭크인해 겹치기로 출연하느라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주범은 변덕스런 날씨였지만 하늘에 대고 주먹질한다고 해결날 수도 없는 일. “양쪽 제작진이 너그럽게 이해해줘 고맙다”는 ‘외교적 발언’으로 시치미를 떼지만 실제로는 눈총을 받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하다.
서로 장점을 한마디씩 해달라고 하자 설경구는 “승원씨는 어떤 상황이 갑자기 닥쳐도 동물적인 감각으로 툭 받아넘기는 솜씨가 탁월하다”고 추켜세운다.
그의 말처럼 ‘광복절특사’를 보면 계산된 상황이나 과장된 몸짓보다는 두 배우가 티격태격하며 주고받는 공방이 훨씬 큰 웃음을 자아낸다. 촬영 때도 김상진 감독이 대체적인 상황과 분위기만 설명한 뒤 즉흥 연기를 주문했다고 한다.
차승원은 “경구형 연기야 국내외 영화계가 공인한 것 아니냐”면서 “모든 배우들이 함께 출연하고 싶어하는 배우의 파트너로 선택된 것이 기쁠 따름”이라고 찬사를 늘어놓는다.
그는 “작품성 있는 영화에 출연할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영화제에서 상받는 것보다 한명이라도 더 많은 관객이 내 영화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잘라말한다.
“단순히 무겁거나 뒤틀린 영화에 애써 출연할 생각은 없어요. 그렇다고 오로지 흥행만 바란다는 뜻은 아니구요. 이창동 감독님의 영화처럼 재미와 감동을 함께 갖춘 작품이라면 개런티나 흥행은 따져보지도 않은 채 매달리고 싶어요.”
올해 배우인생 최고의 해를 맞고 있는 설경구는 지금쯤 어떤 배우를 목표로 뛰고 있을까.
“예전에는 교과서에 있는 정답처럼 알 파치노나 로버트 드니로를 존경한다고 말하곤 했어요.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내가 잘 알지도 못할 뿐더러 그들의 연기를 배우려고 노력한 적도 별로 없더라구요. 요즘은 생각이 비뀌었지요. 승원씨를 비롯해 이성재씨, 최진실씨, 송강호씨 등 주변에서 만나는 선후배 배우들을 좋아하고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