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숙한 표정의 땜통머리 ‘꺼벙이’와 ‘일자(一字)눈썹’의 ‘순악질 여사’는 만화독자라면 누구나 아는 주인공이다.
‘꺼벙이’와 ‘순악질 여사’로 널리 알려진 원로만화가 길창덕씨(73)는 국내만화사를 통틀어 가장 폭넓은 독자를 가진 작가이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 초까지 ‘아리랑’이나 ‘실화’같은 성인 대중만화를 본 세대가 있는가 하면 6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연재된 어린이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가 있다.
또 70년대부터 연재된 그의 대표작 ‘꺼벙이’와 함께 자란 세대, 90년대 단행본으로 새롭게 출간된 ‘내동생 꺼실이와 우리 아빠 꺼벙이’를 본 세대 등 그는 거의 모든 세대를 독자로 거느리고 있다.
1997년 12월 건강 문제로 붓을 꺾었지만 지난해 우체국에서 발매된 ‘꺼벙이’ 만화 우표 200만장 전량이 며칠만에 동날 만큼 그의 인기는 여전하다.
만화평론가인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교수가 쓴 ‘꺼벙이로 웃다,순악질 여사로 살다’(하늘아래刊)는 길씨의 삶과 만화세계를 정리한 평전이다.
평안북도 선천이 고향인 길씨는 한국전쟁이 나기 전까지 역무원으로 일하다 1.4후퇴 때 홀몸으로 월남했다.1955년 서울신문 독자투고에 만화가 실리면서 만화가로 데뷔한 뒤 성인만화에서 어린이만화로, 그리고 시사만화까지 다양한 장르의 만화를그렸다.
그러나 압권은 어린이만화였다.한국만화의 대표작이 된‘꺼벙이’, 국내 최장인 4천800회 연재기록의 ‘재동이’외에도 ‘쭉쟁이’ ‘고집세’ ‘코메디 홍길동’등 수많은 명랑만화들이 아이들을 웃기고 울렸다.
길씨의 만화인생을 꼼꼼히 복원해낸 박 교수는 “길창덕의 어린이만화는 대표적인 한국의 명랑만화로 점차 산업화되고 뉴미디어로 확산되는 만화시장의 변화 속에서 만화의 본질과 정신을 일깨우는 숲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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