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엣소리 기행

‘옛소리 기행’을 쓰기 위해 현장을 다니다 보면 많은 소리꾼을 만나게 된다. 그 중에는 젊은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연로하신 분들이라 항상 마음만 바쁘다. 연세가 많이 드셨기 때문에 사설도 잊고, 호흡도 가빠 제대로 소리를 못하실 때가 많다. 그런가 하면 심지어는 취재를 하고 얼마 후에 소식을 들으면 이승을 떠나셨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럴 때면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듯한 분노를 느낀다.

소리 하나로, 아니면 살아오면서 평생을 일에 매달려 살다가 70 고령을 훌쩍 넘긴 후에 겨우 무엇인가 하나 이루었다고 할 정도가 되면 이승을 떠나다니….

故 박선구 옹의 영전에 이 글을 바치며…

우리는 그 영전 앞에 머리를 조아려 죄스러워 할 수밖에 없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찌든 삶 속에서 해오던 많은 소리들을 가슴에 묻고 돌아가시는 분들이야 오죽 하련마는, 그렇게 되기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에게 분통을 터트릴 수 밖에 없다. 물론 그 중에는 필자 자신도 예외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박선구 옹(취재당시 83세·인천시 남구 용현동 거주·인천시 무형문화재 주대소리 보유자)을 처음 뵌 것은 경기옛소리 기행을 쓰기 시작한 지 두 달 후인 2002년 4월쯤이다. 그 후에 두 세 차례 더 옹의 모습을 뵈었다. 이번에 옹의 소리에 대해서 쓰려고 수소문을 하니 지난 12월초에 운명을 하셨단다.

그 동안 수 없이 많이 당해본 일이고 그런 일이야 늘 있는 일이겠지 하고 마음을 추스려 보기도 하지만 아픈 마음이야 더할 나위가 없다. 그 보다는 필자 자신의 게으름을 먼저 탓해야 옳지 않을까 하는 반성도 해본다.

2002년 여름에 인천 수봉공원 내에 있는 은률탈춤 전수관 앞마당에서 그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몇 시간이나 취재에 응해주신 박선구 옹의 영전에 삼가 머리를 조아려 사죄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진작 글을 썼다면 이런 아픔이 조금은 가셨을 것 아닌가.

엉차, 어아디여차, (헤이차)

엉차 (헤이디어차)

어이햐아 (허이디여)

어이디여차 (헤이자아)

허이디어차 (헤이차어)

허이디어차 (헤이허허)

헤이디여차 (헤이차아)

허이 나차타자 (허아야)

허이디 (허이디여)

허이야아 (허이디여차)

허이디어 (허이더)

하라이샤 (어허차)

그물을 확확 들면서(항차)

어이디여차 (허여이차)

어이 많이 들었네 (하라 디여차)

하라차 (어히디어)

어차 (하라차)

어허라차 끌어올려 (엉차야하)

어라차하(여허차)

고기를 잡기 위해 물 속으로 풀어 넣었던 그물을 다시 배 위로 끌어올리면서 하는 소리다. 그물을 올리면서 하는 소리를 인천이나 강화에서는 ‘쟁기내는 소리’라고 한다. 그물을 당기는 소리는 닻감는 소리와 비슷하며 느린 소리와 빠른 소리가 있다.

그물당기며 부르는 ‘쟁기내는 소리’

사설을 보면 특별한 내용을 갖고 있지도 않다. 그저 힘을 받기 위해 뜻 없는 소리로 계속하다가 “고기가 그물에 많이 들었으니 어서 올리세”하는 소리를 하기도 하고, 소리를 잘하는 소리꾼 같으면 한 두 마디 사설을 붙이는 것이 고작이다.

하기에 바다소리인 어요(漁謠)는 배치기 소리와 같이 음률과 사설이 하나의 정형화된 형태를 갖고 있는 것과, 그물 당기는 소리, 노 젓는 소리 등과 같이 단음절 형식으로 이루어진 소리로 구분된다. 만선을 기리기 위한 배치기 소리 등은 전문적인 소리꾼들에 의해서 불려지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지만, 그물 당기는 소리와 같이 특별한 기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소리는 누구나 소리를 주고받을 수 있다. 이러한 형태는 작업에 힘을 얻고 절주에 맞추어서 통일된 동작을 필요로 할 때 나타난다.

그물을 당기는 소리는 지역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난다. 전라남도 여천지방에서는 그물을 당길 때 ‘올레소리’라고 해서 소리를 하는데 이 소리는 약간의 사설을 갖고 있다.

‘올레’란 끌어 올린다라는 뜻으로 볼 수가 있다.

오올래 보자(오올래 보자)

이 그물 안 헝크러지게 어서 당기소(오올래 보자)

헝크러지면 어장을 못하네(오올래 보자)

뒤에 사람은 그물을 챙기고(오올래 보자)

이물 사람은 천천히 당기소(오올래 보자)

대를 뻗쳐서 힘차게 당기소(오올래 보자)

동에는 청제요왕신(오올래 보자)

남에는 적제요왕신(오올래 보자)

서에는 백제요왕신(오올래 보자)

북에는 흑제요왕신(오올래 보자)

중앙에는 황제요왕신(오올래 보자)

화이동심을) 하옵시면(오올래 보자)

우리 배가 만선만 되면은(오올래 보자)

돛대 위에다 봉기를 꽂고(오올래 보자)

봉기 우에다 연화를 받어(오올래 보자)

부모처자식 공양을 하세(오올래 보자)

가자 가자 어서 가세(오올래 보자)

우리 고장을 어서 가세(오올래 보자)

부모처자식 기다린다네(오올래 보자)

버끔이 뿌걱뿌걱 난 것을 보니(오올래 보자)

우리배 만선은 되겠구나(오올래 보자)

힘차게 어서들 당겨를 주소(오올래 보자)

올레보자(오올래 보자) 민초의

민초의 애환·기쁨 고스란히 배어

같은 작업을 한다고 해도 지역이나 소리꾼에 따라서 많은 변화를 가져오는 소리. 그것이 바로 우리 소리의 특징이다. 전국에서 나타나는 많은 소리들은 모두가 그 시대적, 역사적 배경과 소리꾼의 기능, 환경적 요인에 따라서 특징 있는 소리로 나타난다. 하기에 지금 이 시대에 우리는 지역에서 전해지던 많은 소리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찾아내고 보존, 전승을 시켜야 할 사명을 지닌다.

그러나 요즈음 일반적으로 정형화 되어있는 민요는 전승이 되고 있으나 창자의 기능에 따라 달리 표현되는 속요(俗謠)의 경우에는 하루가 다르게 소멸되고 있어 안타깝다. 그 소리는 단순히 소리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역사 속에서 민초들의 애환과 기쁨, 그리고 삶의 역사가 고스란히 배여 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이 소리에 더 많은 공을 들여 찾아내고 재현시키는 일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글/하주성(민속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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