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국제실학 학술대회

선구자는 실학자들이었다’

서양의 음악이론을 자주적으로 인식한 개성, 장단지역의 실학자 서유구는 계이름과 오선악보 등을 소개한 ‘율려정의 속편’을 수용, 조선의 음양(陰陽) 체계에 서양악기인 양금을 적용했다. 또한 실학자 홍대용은 음의 높이를 측정하는 율관제도를 비판하고 조선의 실정에 맞는 척도관을 내세웠는데 이때 서양악기인 양금을 제시했다.

이같은 주장은 30일 경기도문화예술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국제실학 학술대회에서 중앙대 노동은 교수의 ‘실학파의 음악관과 근대성’이란 주제발표에서 나왔다.

경기문화재단(송태호 대표이사)은 실학정신의 현대화를 모색하고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의 실학적 의미를 재조명하기 위한 국제실학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박광용 교수(가톨릭대)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학술대회에선 총 6개 주제발표와 종합토론(사회 한영우 서울대 교수)이 펼쳐졌다.

첫번째로 조성을 아주대 교수는 ‘동북아시대의 실학개념과 향후 연구방향’ 주제발표에서 “한·중·일 3국은 19, 20세기말까지 서구의 압력과 침략을 받으며 상호갈등을 계속해 왔는데 공동의 자산인 실학을 21세기 현실에 맞게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삼국의 실학을 지속적으로 비교 연구해 통합 개념을 형성, 국제적인 압력에 공동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학술회의에는 실학과 음악, 미술, 한문학 등 문화예술과의 연관성을 조명해 눈길을 끌었다.

노동은 교수는 “조선 실학자는 개신악학정신으로 화이적(華夷的) 음악관을 극복하고 조선의 자존적 음악세계관을 수립했다”고 전제, 음의 높이를 정하기 위해 만든 율관(律官)제도를 자주적으로 주장한 홍대용의 음악이론을 소개했다.

“홍대용은 기존의 황종관(黃鐘管) 산출방식은 율관을 만들어 기장(黍)을 그 율관에 담아내는 것으로 천년전부터 중국에서 내려온 것”이라며 “지역의 토질과 시대에 따라 그 적용방법이 부정확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양금에서 정율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특히 양금은 1970년대까지 지역의 율방문화로 이어져왔다는 점에서 현실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한편 실학자들은 양악을 비판적으로 수용, 조선음악을 발전시킨 계기로 삼았다는 주장이다.

노 교수는 “양금에서 서양의 #(sharp)과 b(flat)을 음양(陰陽)이 적용되는 두 괘로 이해했으며, 이는 이규경의 강(剛)과 유(柔)의 이해체계로 전해졌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실학자들의 자주적 음악이론은 개화사상에 영향을 주었다”며, 개화당 김옥균의 영향을 받은 최초의 음악유학생 이은돌은 일본육군교도단군악대에서 유학하고 이어 프랑스 음악교사 다그롱에게음악수업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태호 교수(명지대)는 ‘조선후기의 회화 경향과 실학’이란 주제에서 실학이 진경산수화와 풍속화 등의 미술사조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실학은 18세기 진경산수화와 풍속화의 발달과 깊은 연계성이 있다”며, “사람과 동등하게 물성을 중시한 ‘인물성동론’이 조선후기 회화의 독창적 화면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이어 박무영 교수(연세대)는 ‘조선후기 한문학의 실학적 전통’이란 주제발표에서 “사상적인 용어인 ‘실학’과 ‘문학’의 결합이 조선후기 한문학과의 상관성 정립이 필요하며, 이후 현대적 계승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과 일본의 대표적 실학자 연구자들의 주제발표도 눈길을 끌었다.

중국 장학지 교수(북경대)는 ‘중국 실학의 함의와 현대적 의의’란 주제발표에서 “실학은 명·청시대에 일어난 경세치용의 사조”라며 도덕과 경제, 정치적 측면에서 실학을 조명했다.

일본 오가와 하루히사 전 동경대 교수는 ‘18세기 일본실학자 미우라 바이엔의 천인관계론과 21세기’란 주제를 발표했다. 오가와씨는 일본의 대표적인 실학의 선구자 미우라 바이엔의 사상을 다뤘다.

“실학자 미우라는 인도(人道)와 천도(天道)의 조화에 따라 인간이 완성된다. 자연법칙을 따르는 천도는 자연생태계와 지구상의 자연, 생명, 인간의 자연성을 뜻한다”며, “과학기술의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는 현대에 18세기 실심(實心)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형복기자 bok@kg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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