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정치는 룸살롱에서?

민주당 정대철 대표와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자민련 김종필(JP) 총재 등 3당 대표의 룸살롱 술판은 생각할수록 한심하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청와대 만찬을 마친 뒤 자리를 옮겨 뒤풀이 한 것을 두고 누가 탓하겠나. 돼지 삼겹살집에서 소주를 마시며 정국 타개책을 얘기했다면 누가 뭐라겠나. 하고 많은 집을 놔두고 왜 하필이면 서울 강남의 고급술집인가.

이들이 간 J룸살롱은 5공 이후 역대정권의 실세들이 애용해온 장소로 이름났다. 6공 이후 박철언 전 의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 등 역대 정권의 ‘권력 황태자’들이 자주 드나들던 술집이다.

술판이 벌어진 날 J룸살롱에는 3당의 대표, 총재비서실장, 3당 대변인 등이 참석했다. 유인태 정무수석도 인사차 잠시 들렀다. 상상해보니 가관이다. 이들은 ‘발렌타인 17년’으로 폭탄주를 마시며 20여곡의 노래를 불렀다. JP가 ‘너와 나의 고향’을 부르자 박희태 대표가 “3김 중 한사람의 노래를 듣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 ”고 말했다. 심히 낯 간지럽다. 박 대표가 ‘목포의 눈물’을 부르자 정대철 대표가 바로 마이크를 이어 잡고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불렀다. “양당이 노래로 지역 화합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 참석자의 말은 꿈보다 해몽이 좋다.

“참석한 세 대표는 과거 정치를 이야기 하며 옛날에는 정치가 낭만이 있었는데 요즘은 너무 각박하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풀 때는 풀자고들 얘기했다. 국익을 위해 봉사하는 선의의 경쟁자라는 동지 의식이 요즘 정치인들 사이엔 없는 것 같다고 3당 대표는 아쉬워했다”는 ‘ 술판 대변 ’도 걸작(?)이다.

아무리 술 먹을 자유가 있다 하여도 룸살롱 뒤풀이는 대단히 잘못 됐다. 노무현 대통령의 입에서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위기감이 든다”는 말이 나오는 절박한 판국에 그런 고민에 빠진 노 대통령을 만나고 온 사람들이 뒤풀이를 고급 룸살롱에서, 술값을 700만원씩이나 내고, 7~8명의 여종업원에게 1인당 30만원 이상의 팁을 주면서 고작 ‘낭만의 정치’ 운운했다니 동정심이 생긴다.

대통령은 밤잠 못자고 깊은 시름에 젖어 있고, 국민은 앞날을 불안해 하고 있는 터에 룸살롱에서 노래 ‘여자야’를 부르는 여당대표가 그렇고, 청남대 골프 회동 때 경제가 어려운데 무슨 골프냐 하던 야당대표가 그렇고, 상석에 앉아 ‘어른’ 행세를 한 정치 9단이 그렇다. 3만원 이상 식사를 금지하는 공무원 윤리강령을 시행해 놓고, 도대체 정치인들은 무슨 돈이 어디서 어떻게 생기길래 ‘황태자 클럽’이라는 그 비싼 술집에서 희희낙락 했느냐 이 말이다.

“어제 룸살롱 가서 술 마신 정치인들은 다 죽어야 한다” “아예 ○로 보내버리자” “어제는 X같은 세상의 하루였다” “사이비 정치꾼들아, 지금이 술파티할 때냐”는 인터넷상의 비난은 약과다. ‘은퇴하라’ ‘물러나라’고 해서 듣는 척도 안하겠지만 앞으로도 “뭐 신문에 그런 거까지 다 써. 술 한잔 먹은 것 갖고”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이 나라 정치의 장래는 절망적이다.

정치인들에게 소주만, 막걸리만 마시라는 게 아니다. 좀 눈치껏 살라는 얘기다. 눈치로 때려 잡는다는 소위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그만한 판단력도 없나. 이런 소리가 듣기 싫거든 정치판을 떠나면 된다. 돈 많이 벌어서 J룸살롱보다 더 비싼 곳에서 술을 밤새도록 마셔도 상관하지 않겠다. 지금 국민들은 겁나서 신문이나 뉴스를 못보겠다고 할 정도다. 제발 폭탄주에서 깨어나기 바란다.

/임병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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