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영화계의 수구주의적 생각은 아무래도 옳다고 보기가 어렵다. 그동안 줄곧 스크린쿼터의 보호막 속에서 성장해 왔으면 이젠 능히 자생력을 갖출 때가 됐다.
국내 영화관의 방화상영 의무 일수를 연간 106일에서 73일로 줄인다고 한국 영화산업의 기반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아직껏 그만한 경쟁력을 지니지 못했다면 그것은 영화계의 책임이긴하나 그토록 허약하다고는 믿지 않는다.
한·미투자협정(BIT) 체결을 두고 미국측이 제기한 스크린쿼터 이의에 문화는 흥정의 대상이 아니라는 영화인들의 생각 또한 맞지 않다. 영화산업 역시 엄연한 경제행위의 범주에 든다.
새삼 대미 수출액 330억달러의 수출 의존도와 BIT 체결에 따른 40억달러의 투자유치 효과를 말하는 정부측 설명이 아니어도 영화산업만이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것은 시대 착오다. 국제사회에 개방되지 않은 산업분야가 없다. 농·수산업도 완전히 노출되고 있다. 심지어 대학도 조만간 개방되어 경쟁관계에 들어간다.
영화도 미국 영화만 더 들어오게 되는 게 아니다. 지난 한·일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일본 대중문화 확대 도입의 후속조치가 이루어지면 ‘짠짠 바라바라’ 사무라이(武士) 영화도 들어올 것이다.
국가경영을 위한 총체적 대외정책에 의해 거론되는 스크린쿼터에 대해 국수주의적 애국심만을 고집하는 것이 애국일 수는 없다. 영화계에서 말하는 정신문화의 혼은 영화인들의 의지가 있으면 더 개방된 영화산업 환경에서도 얼마든지 꽃피울 수가 있고 또 그러한 경쟁력을 보일 때 더욱 빛을 뿜는다.
어쩌다가 스크린쿼터는 영화인들의 집단이기주의라는 말까지 나왔는지 참으로 답답하지만, 스크린쿼터는 방화의 생명선이므로 절대 포기못한다는 영화인들 주장이 얼마나 사회정서에 합치될 것인지는 심히 의문이다.
방화상영 의무 일수를 없애는 것도 아니고 줄이자는 것이다. 또 이에 문제가 있으면 탄력적인 방안을 강구해 보자는 것이다. 이런데도 무작정 현행 스크린쿼터제만을 우기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정부의 조속한 단안을 촉구해 둔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