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의 퇴임을 5일 앞둔 2003년 2월 20일 낮 12시, 청와대 영빈관에서 박지원(朴智元) 청와대 비서실장과 각 수석, 그리고 청와대 출입기자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고별 오찬’이 열렸다. 주인공은 ‘박지원’ 실장이었다.
1997년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시절부터 재임 5년간 그가 맡은 직함은 ‘당선자 대변인’ ‘청와대 대변인’ ‘문화관광부장관 ’ ‘청와대 정책기획 수석’ ‘대통령 정책특보’ ‘청와대 비서실장’ 등 무려 6개였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비밀협상 때 가졌던 ‘대통령 특사’라는 직함도 있었다.
김대중 정권하의 실세 중 ‘왕실세’인 그에게 야당이 ‘부통령’ ‘소통령’ ‘대(代)통령’이란 별칭을 붙여준 것이 무리는 아니었다.
고별 오찬 때 박실장은 “비서실장에 임명될 때 어떤 경우에도 대통령 내외분이 건강하시고 국정을 마지막까지 잘 챙겨 국민과 함께 하는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보필하자고 두 가지를 다짐했다 ”고 술회한 뒤 “나름대로 참 열심히 일했다”고 말했다. 그날 박실장은 “다시 한번 가슴 떨리는 심정으로 석별의 인사를 마친다”면서 안경 너머로 눈물을 떨궜다. 그날의 약속대로 그는 퇴임 후 마포의 오피스텔에 개인 사무실을 마련하고 매일 동교동 김대중 전대통령의 사저에 출근했다.
그 박지원씨가 대북송금 의혹사건과 관련해 특검 소환조사를 받게 될 처지이면서 지난 7, 8일 지인들 몇몇과 함께 북한산 비봉에 올라 김대중 전대통령 내외의 건강과 국운융성의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내가) 역사적인 남북정상 회담에 기여했다는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한다. 그런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똑 같은 길을 걸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박지원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혐의로 6월 18일 구속, 수감됐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자신이 20년간 총애한 그가 구속되는 모습을 TV로 지켜보았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박지원씨는 6월 18일 밤 11시 30분쯤 서울 대치동 특검사무실을 떠나와 12시 50분쯤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도착했다. 수형자 옷을 입은 그의 수인번호는 ‘1617번’ 이었다.
그는 수감되기 전 18일 서울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들어가기 전 소회를 묻는 기자들에게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며 조지훈 시인의 시 ‘낙화’를 인용,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꽃의 의미’가 한때 ‘소통령’이라는 별칭을 들으며 국정을 장악했던 그의 처지인가. 좌초위기에 처한 햇볕정책인가. 정치적 공세를 받아 위기에 몰린 김대중 전대통령인가. 그는 수감될 때 조정래씨의 대하소설 ‘한강’ 7·8·9권을 갖고 들어갔다.
박지원씨는 수감 첫날인 19일 자신에게 150억원의 뇌물을 전달했다고 진술한 이익치 전현대증권 회장을 명예훼손, 공무집행방해, 횡령 등의 혐의로 고소·고발했다. 가증스러운 술수를 부리는 자, 과연 누구인가.
“꽃이 지기로소니 / 바람을 탓하랴 / 주렴 밖에 성긴 별이 / 하나 둘 스러지고 / 귀촉도 울음 뒤에 / 머언 산이 다가 서다 / 촛불을 꺼야 하리 / 꽃이 지는 데 / 꽃 지는 그림자 / 뜰에 어리어 / 하이얀 미닫이가 / 우련 붉어라 / 묻혀서 사는 이의 / 고운 마음을 / 아는 이 있을까 / 저허하노니 / 꽃 지는 아침은 / 울고 싶어라”
맑은 영혼에서나 나올 법한 아름답고 서러운 ‘낙화’의 절창을 권력의 허무와 비정에 연결시킨 박지원씨가 만일 무혐의로 풀려 나온다면 그는 감회를 어떻게 비유할 것인가.
“그래도 한강은 흐른다”? 정치가 참으로 더럽고 추악해도 한강은 흐른다.
/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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