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비평/아름답지만 슬픈 공연

“이 보다 더 슬플 순 없다.”

과천시민회관 대극장, 10여명의 관객과 방송국 카메라 3대, 빈 극장 공간 속에 흩어지는 배우들의 소리, 몇 줄기 빗소리 같은 박수소리…. 이것이 2003년 경기문화재단 특별공모지원작인 극단 청계의 ‘비디오랜드에서의 마지막 탱고’(김소연 작, 이상훈 연출)의 공연 현장이며, 우리 지역 연극의 실체이다.

공공 공연장인 시민회관에 붙어있는 즐비한 영화와 이벤트 포스터 사이를 비집고 겨우 이틀 공연한다고 수줍게 자리잡고 있는 이 작품의 포스터가 안스러웠다. 특별히 이 연극은 젊은 작가와 연출가, 이제 자리를 잡아가려는 지역의 극단이 준비한 것이기에, 경기문화재단이 과감히 초연 작품을 지원했기에 적적함이 더 컸다.

작품의 질적 수준을 떠나서 과연 과천 시민들은 이 공연장에서 이 연극이 상연되는지 알고 있었을까. 근처에 사는 경기도민은. 공공 문화시설과 지역 주민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기계적이고 상대주의적, 경쟁적 삶에서 재화와 오락과 대중 문화가 그들을 충분히 위로하고 치유하는 걸까. 인간과 인생, 사회를 다시 바라보고, 달리 보고, 함께 새로운 생각을 해보자고 권유하는 연극이 있고, 집 가까이에서 예술가들의 희생을 담보로 연극이 상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까.

필자는 이 글에서 작품의 질적 비평을 통하여 지원에 대한 사후 평가와 지역 공연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는데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감동이 아닌 감정이 너무도 아리게 새겨졌기에 이렇게 감상적인 소감으로 작품 리뷰를 시작할 수밖에 없음을 송구,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비디오랜드에서의 마지막 탱고’는 서로를 사랑하는 부부가 각각 희생과 배려로 살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결국 헤어지게 되고, 이후 서로를 더 잘 알게 되지만 결코 사랑과 삶을 공유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를 극의 주 맥락으로 삼고 있다. 작가는 4인의 주요 등장 인물들을 대학 선·후배라는 관계의 끈으로 엮고, 또 다른 두 개의 짝사랑을 연결하여 그들의 관계를 극화하였다. 아내 지수를 짝사랑하는 남편의 후배 태연, 그를 또 짝사랑하는 지수의 후배 시연이 있어서 부부의 사랑과 대조를 이루게 한 것이다. 무위무욕의 심정으로 영화감독이 되는 야망을 접고 비디오 대여점을 운영하며 소박하게 사는 남편 지욱의 플라토닉한 사랑은 아내와 공유되지 못하고, 젊은 후배들의 사랑, 짝사랑과 비교되며, 파경을 맞는다.

작품은 결국 사랑과 삶, 가까운 인연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우리 인생을 어떻게 살찌우는가를 되묻고 있는 것이다. 공연에서는 세트 전체를 채색하고 그 위에 이미지를 투사하는 영상을 사용하고, 피아노, 첼로, 바이올린의 독주, 콘체르토 등 우리에게 친근한 음악을 골고루 사용하며 극에 대한 감성적인 수용을 도와주고자 했다. 전반적으로 편안하고 무난한 공연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공연은 호기심, 긴장, 감동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빈 극장 공간과 함께 허전함을 남겼다. 몇 가지 이유를 들어보자. 극 사건에 대한 좋은 착상, 감성적인 대사, 현대인의 고민 등 모든 것을 연극이 담고 있어도, 우선 설정에의 설득력- 지독한 사랑이나 무욕의 근거-이 분명해야 하고, 극적 발전의 긴장감, 이어지는 위기, 갈등이 정체하게 구성되어 있어야했다. 파국에 이르러 결국 설득력도 부족하게 되고, 객석에 던지는 연극의 메시지가 흩어져서 희석되고 말았다. 극의 맥락과 거리가 멀고, TV 시트콤처럼 구성된 몇몇 장면들이 지나치게 긴 것도 극적인 밀도를 떨어뜨렸다. 이런 단절을 많은 장면간의 영상과 음악으로 채워보려 했지만 몇 차례 감성적 뒷받침이 될 뿐, 이야기의 구성은 힘을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필자는 젊은 작가, 연출가, 단체의 용기있는 창작에 박수를 보내며, 그들의 발전을 위한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향후 관객과 지자체의 격려와 지원이 지속된다면, 그들은 더욱 훌륭한 공연을 과천 시민, 경기도민을 위해 창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최준호.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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