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하운 문학상

‘나병 환자 시인’으로 생전에 세상의 화제를 모았던 한하운(韓何雲·1920~1975)의 작품 중 ‘전라도 길’은 특히 유명하다. 소록도로 가는 길에 쓴 詩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낯선 친구 만나면/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천안 삼거리를 지나도/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룸거리며/가는 길…//신을 벗으면/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발가락이 또 한개 없다”는 대목은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과 더불어 화자의 나병이 절망적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 언어는 마치 남의 일을 말하듯 하는 객관성을 견지하고 있다. 그 객관성은 화자의 비통한 체험에 대한 상상적 추체험(想像的 追體驗)을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함경남도 함주(咸州) 태생인 한하운은 중국 베이징 대학을 졸업하고 함남도청 축산과에 근무했으나 1945년 한센씨병(나병)의 악화로 사직하고 1948년 월남, 유랑생활을 하였다. 6·25전쟁 후 보육원장·출판사 대표·농장장·농업기술학교장 등을 역임하면서 나환자 구제운동에 공헌했다. 다행히 나병이 완치됐는데 1949년 첫 시집 ‘한하운시초(韓何雲詩抄)’, 1955년 제2시집 ‘보리피리’, 1956년 ‘한하운시전집’을 펴냈다. 그의 작품은 나환자라는 독특한 체험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감상성으로 흐르지 않고 객관적 어조로 유지한 특징이 있다. 또 온전한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서정적이고 민요적인 가락으로 노래하였다. 이러한 한하운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한국시연구협회, 월간 ‘시와 시인’, 도서출판 ‘청학’이 한하운 문학상을 공동 제정, 시상하고 있는데 올해 제4회 한하운문학상 대상은 수원에 거주하는 김우영(金禹泳) 시인이 수상했다. 김 시인은 육군 일등병 시절인 1978년 ‘월간문학’ 신인상 당선을 통해 등단했다.

한하운 문학상이 권위있는 문학상으로 전통을 이어 갔으면 좋겠다./임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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