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높고 물 맑은 가을이라 하였다. 여름 비가 진저리 나도록 퍼붓더니, 가을인 데도 하늘은 높지않고 물 맑은 곳도 좀처럼 찾아 보기기 힘들다. 이래서 광교산 자락의 생수같은 개울 물이 더욱 정겹다. 속 살이 명경 알보다 더 투명한 물 속을 응시하고 있노라면 마음 속 찌꺼기가 씻겨 내려가는 것만 같다. 높지않은 하늘이야 자연의 투정이라 어쩔 수 없지만 찾아가면 맑은 물이 반겨주는 광교산은 이리하여 참으로 소중하다.
가을은 정리의 계절이다. 올핸 흉년이 들어 농사 얘길 하기가 뭣하지만 그래도 수확을 정리하게 되는 가을이다. 올 한 해를 돌아보는 삶의 정리는 뭣인가를 생각해 본다. 역시 내놓을 게 별로 없다. 올 가을이 유난히 을씨년스런 것은 흉년이 들어서만도 아니고 날씨가 쾌청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그저 덧 없이 또 한 해를 보냈다는 자괴지심 때문이다.
노인 자살률이 높아진다는 기사가 눈에 띄는 가운데 또 한 켠에서는 젊은이들의 이승엽 56호 홈런공 낚아채기 열풍이 세차게 불고 있다. 교통사고 왕국으로 소문난 이 사회에서 자살자가 교통사고 사망자 수보다 많고, 이것이 노인 자살자 수의 증가에 기인한다니 노인들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됐는 지 남의 일 같지 않다. 오죽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마는 살면 얼마를 더 산다고 많이 남지도 않은 삶을 앞장서 포기하는 것인 지 안타깝기만 하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노인이 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한 노령화사회가 된다. 노인을 잔소리꾼 뒷방 늙은이로만 치부하여 능히 가능한 사회참여를 거부해서는 장차의 노령화사회는 더욱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인생이 구만리 같은 젊은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물론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 연유가 어떻든 노인 자살이 늘어가는 것 또한 결코 건강한 사회는 아니다.
프로야구 삼성 경기만을 쫓아 다니는 야구 팬들이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알고 보았더니 관전은 뒷전이고 대박꿈에 치우친 젊은이들이 많다. 직장인은 더러 연월차 휴가까지 내가며 어디고 할 것 없이 원정경기를 따라 다니는 이들은 이승엽의 홈런이 잘 터지는 ‘이승엽존’ 오른쪽 외약석을 찾는 바람에 암표상까지 나온 모양이다. 아시아 신기록의 56호 타구만 잡으면 큰 돈이 된다는 일념에서 다투어 크고 길고 탄탄하게 준비하는 뜰채 군단이 동원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6월22일 이승엽이 세운 세계 최연소 300호 홈런공이 1억2천만원에 팔렸으므로 아시아 신기록 홈런 공은 최고 5억원까지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게 이들의 대박꿈이다. 이에 구단측이 56호 홈런공을 사지는 않고 다만 기증하면 사례하는 것으로 공식 입장을 정리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노인의 자살 증가나 젊은 층의 홈런공 대박꿈이나 다 사회병리 현상이다. 뿌리 없이는 나무가 서있을 수 없고 새 순이 돋아 뻗어가지 않으면 나무가 자랄 수가 없다. 그러므로 뿌리는 새 순의 생명이며 새 순은 뿌리의 희망이다. 동일체의 운명이다. 다만 뿌리는 땅속에서 새순은 공중에서 그 소임을 다 할 뿐이다.
인간사회 역시 다를 바가 없다. 연륜이 쌓인 뿌리일 수록이 튼튼하고, 건실한 새 순일 수록이 폭넓은 그늘을 드리운다. 광교산의 수목들, 단풍을 띠며 겨울을 채비하는 나무들마다 어울리는 뿌리와 새 순의 조화가 맑디 맑은 개울 물을 뿜어내고 있다. 몇 억겁에도 한치의 변함이 없는 대자연의 섭리가 외경스럽다. 이 사회의 뿌리와 새 순이 다 광교산 숲만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는다.
/임양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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